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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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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났던” 딸을 보내고…이예람 중사 부모의 싸움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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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故) 이예람 중사 봉안식에서 유가족이 고인의 유골함을 어루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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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의 성폭력과 군의 조직적 은폐 끝에 목숨을 끊은 고 이예람 중사가 지난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사망한 지 3년 2개월만이다.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싸워온 유족들은 이 중사가 떠나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중사의 죽음은 수많은 ‘최초’와 변화를 만들어냈다. 군을 대상으로 최초로 특별검사법이 통과돼 100일간의 수사가 이뤄졌다. 특정인의 죽음을 대상으로 한 첫 특검이기도 했다. 이 중사 사건은 군사법원법 개정의 계기가 됐다. 2022년 7월부터 시행된 이 개정법은 군 성폭력 범죄, 사망 또는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입대 전 범죄 등 3대 범죄를 민간 경찰에 이첩토록 하는 게 골자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군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조사해 시정조치와 정책권고를 할 수 있는 군인권보호관이 신설됐다.

‘뼈를 깎는 마음’으로 억울함 죽음을 밝혀달라고 싸워 온 이 중사 가족들도 이 변화를 이끌었다. 경향신문은 이 중사의 빈소가 차려진 첫날인 지난 18일, 1150여일 동안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추모소를 떠나지 않고 지킨 아버지 이주완씨(61)와 어머니 박순정씨(53)의 지난 3년을 들었다.

딸의 죽음을 곱씹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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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오후 7시쯤 열린 ‘고 이예람 중사 추모의 밤’ 행사에서 이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왼쪽)와 어머니 박순정씨(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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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국군수도병원 101호에서 숙식하시면서 3년2개월가량 살아냈다는 것을, 쉽게 상상이 안 되기 때문에 많이들 모르신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18일 오후 장례식장에서 열린 ‘추모의 밤’ 행사에서 말했다. 그는 “자식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빈소를 유지하며 3년 넘게 버티신 것도 굉장한 고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해자와 책임자들이 처벌을 다 받을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아버지 이씨는 딸의 추모소가 차려진 국군수도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차디찬 냉동고에 들어간 딸의 곁을 떠난 순간은 가해자들의 재판을 보러 갈 때, 몸이 급속히 나빠져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뿐이었다.

피고인들의 재판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이씨는 가해자와 2차 가해자들이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압력과 합의를 종용하던 81일을 복기하고 또 되뇌었다. 그러다 보면 속이 썩어들어갔다. 이씨는 “저 자신이 이겨내지 못할 분노가 치밀곤 한다”며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진단이 나오는 게 예삿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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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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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부부는 건강을 잃었다. 이씨는 장폐색으로 30cm쯤 장 절제술을 받았다. 박씨는 공황장애 증상이 심각해지면 쓰러지곤 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백혈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숨진 고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함께했다. 박미숙씨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부족한 시간에 특검에 가서 (피해 사실을) 낱낱이 듣는 건 유가족을 또 죽이는 일이더라”며 “뼈를 깎는 고통의 날을 보내오셨는데, 유족이 그렇게 나서게 하면 안 된단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딸이 남긴 ‘무서운’ 스케치북


지난해 2월 공군본부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순직 결정을 내린 이후 부부는 천천히 장례를 준비했다. “3주기가 지났으니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몇 달 전 장례를 마음 먹고 정리하러 간 이 중사의 관사에서 박순정씨는 다시 한번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다. 이 중사가 그림을 그려둔 노트에는 밧줄에 목을 건 사람의 그림 등이 연필 소묘로 그려져 있었다. “우리 예람이가 평소에 그리던 것과 다른, 섬뜩하고 무서운 그림이었다”고 박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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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가 이 중사의 관사에서 발견된 스케치북을 들어 보이고 있다. 스산한 나무와 한 사람이 그려진 그림 뒷장에는 밧줄에 목을 건 사람의 그림 등 연필 소묘가 그려져 있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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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관들이 관사에서 증거를 수집할 때 함께 있었던 이 중사의 고모부만이 본 그림이었다. 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간의 증거 목록에 빠져 있었기에, 부부의 눈에는 낯설기만 했다. 아버지 이씨는 지난달 사자명예훼손 및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군무원 양모씨와 공군본부 공보담당 정모씨의 항소심 재판에 그 그림을 들고 가 “이런 극단적인 모습을 스케치북에 그리게 만들었다는 게 이해가 되시냐”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딸을 잃었던 날이 떠올라 전화벨 소리에도 놀라는 박씨는 딸이 남긴 그림을 보고 공황장애 증상이 더 심해졌다.

떠나보내겠다는 마음으로 적은 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에 박씨는 또 다른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무서운 그림’이 가득한 스케치북과 함께 놓여 있던, 같은 모양의 빈 스케치북이었다. 그 속을 박씨는 딸 ‘예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로 채워 넣었다.

‘반짝반짝 빛났던 예람이’ ‘아름답고 찬란했던 딸의 삶을 기억할게’ ‘너는 봄처럼 따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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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예람 중사의 어머니 박순정씨가 이 중사를 생각하며 쓴 손글씨. ‘아름답고 찬란했던 딸의 삶을 기억할게’라는 글귀가 보인다. 이 스케치북은 이 중사의 관사에서 발견됐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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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참고해 따라 쓴 손글씨(캘리그라피) 옆에는 이 중사의 얼굴이 그려진 도장과, ‘박순정’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찍었다. 뒷면은 비워뒀다. 이 중사가 그 뒤를 평소에 그리던 예쁜 그림으로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18일 박씨는 “내일(입관식) 예람이에게 보내줄 것”이라며 “예람이가 하늘나라에서 채워줄 것을 믿는다”고 했다. 이날 내내 박씨는 스케치북을 품에서 떼놓지 않고 소중히 껴안고 있었다.

박씨는 사실 한동안 ‘예람’이라는 이름을 금기어처럼 잘 내비치지 않았었다고 했다. 그는 추모의 밤 행사에서 “이 자리에서만큼은 예람이를 실컷 부르려고 한다”고 했다.

“아파서 잘 안 보게 돼서, 저도 모처럼 들어가 보네요.” 박씨는 기자에게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네이버 밴드 사진첩을 보여줬다. ‘이이이박 가족들’이라는 이름의 공간에는 이씨인 아버지, 오빠, 이 중사, 박씨인 어머니의 즐거운 추억들이 차곡차곡 담겼다. 공군항공과학고 시절 학교 축제인 ‘날개제’에서 밴드 보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 임관을 앞두고 머리를 싹둑 자를 때 어색해하는 이 중사의 모습 등이 보였다. 빅뱅과 2NE1의 노래를 행복하게 노래하는 앳된 딸을 보며 박씨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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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故) 이예람 중사 봉안식에서 유가족이 봉안 전 고인의 유골함을 마지막으로 끌어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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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사가 20일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되며 부부는 3년2개월만에 국군수도병원을 떠나게 됐다. 가해자 장모 중사는 총 징역 8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특검팀이 재판에 넘긴 여타 가해자들의 항소심은 진행 중이다.

휴대전화 화면 속 이 중사를 보며 웃던 박씨는 “사실 지금 어떤 마음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웃어도 되는지도 모르겠다”라며 “그저 우리 예람이가 씩씩하고 두려움 없던 용감한 군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씨는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일단 병원에 입원해 건강을 회복해서, 가해자들이 제대로 다 처벌될 때까지 다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이씨의 목에서는 딸의 군번줄이 여태 떠나본 적이 없다.


☞ “멋있고 씩씩한 당신”···고 이예람 중사 3년 2개월만의 장례식
https://www.khan.co.kr/politics/defense-diplomacy/article/202407181705001



☞ [오늘을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결심하기까지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2407191600051



☞ 이예람 중사 순직 결정, 군인권 제도 개선 갈 길은 멀다[플랫]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2141106001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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