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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 (금)

"다 아는데 왜 재밌지?"…'찐 한국인'이 쓴 대한민국 영어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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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연간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어느 날 문득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은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궁금해서 '아마존'(Amazon.com)에 가서 검색 해봤어요. 영어로 된 한국 관련 여행서는 생각보다 적어서 10여권 밖에 안되고, 그중에서 한국인이 쓴 책이 한 권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찐 한국인' 중에서 영어로 책을 쓸 정도로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고, 한국 출판사에서 영어로 된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도 없을 테니까요. 외국인이 쓴 한국 여행서를 몇 권 사서 보니까 재미가 없어요. 진짜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 치게 만드는 책은 없었습니다."

< K를 팝니다 >(박재영 지음, 난다 펴냄)는 한국을 여행하고 싶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행 에세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한 권에 묶어서 냈다. 의사 면허가 있지만 환자를 보지 않고 지난 25년간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활동해온 박재영 작가는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프레시안

▲박재영 작가는 <청년 의사> 편집주간,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 진행자를 맡고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여행준비와 요리가 취미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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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한국인'이 인공지능 번역기를 활용해 영어로 쓴 최초의 한국 여행서

"일부 지인들에게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고 불린다"는 박 작가는 한국 음식, 명소, 체험활동 등 단편적인 정보를 담은 여행서들과는 달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로 썼다.

"한국 간장은 일본 간장과 만들어지는 방법도 다르고 먹는 용도도 다르다, 깻잎이나 콩나물처럼 한국인만 먹는 채소를 포함해 한국인이 먹는 채소의 종류가 300가지 이상이다, 한국인들에게 삼겹살이나 치킨, 김치와 소주가 어떤 의미인지 등을 이야기해주면 외국인들이 매우 재미있어 합니다. 카페에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다 놓고 화장실을 가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한국의 놀라운 치안 등도 흥미로워 합니다.

서울 밤 거리의 그 많은 빨간 십자가가 교회라는 걸 우리는 다 알지만, 외국인들은 모릅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교회의 십자가를 네온사인으로 장식하는 나라는 없거든요. 한국 식당 문화도 우리에겐 너무 익숙하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신기한 것들이 많습니다. 테이블마다 달린 수저통이나 호출 벨, 가위와 집게를 쓰는 것도 특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이 꼭 대단한 명소에 가서 어마어마한 풍경을 보는 것만이 아니잖아요.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그 음식의 기원이나 사연을 알고 먹으면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아는 외국인들은 교회의 빨간 네온사인 십자가, 식당의 수저통 등을 기념 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겠죠."

이처럼 '이야기'를 강조하다보니 통상적인 여행서에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부끄러운 역사나 사회 문제 등)도 담긴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 작가는 "한국의 부정적인 면 중에서 숨긴 것도 굉장히 많아요"라며 웃었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고 가장 멋진 관광지이고 한국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쿨하고 가장 행복하다 이렇게 말하면 거짓말이죠.아무도 안 믿겠죠.

그런데 한국에 왜 이렇게 치킨집이 많은가를 얘기하면서 1998년 IMF 이야기와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아서 자영업 비중이 높은 이야기를 한다던지,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북한과 전쟁 위험이 크게 여겨졌던 1970년대 방공호를 건설하는 의미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 등을 이야기하면 그냥 '한국은 빈부 격차가 커서 문제'라는 것보다 훨씬 더 한국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부정적인 묘사들은 주로 과거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부분들도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선진국이 됐고, 과거의 어두웠던 부분들을 많이 개선했기 때문에 지금은 안 그렇다고 얘기할 정도로 사회가 성숙되기도 했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왜 재밌을까"…여행은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을 찾는 이들이 다양한 한국의 모습을 보고, 경험하면서,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K를 파는(selling/digging)' 이 책은 너무 익숙해서 감지하지 못했던, 혹은 태어나기 이전이라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 때문에 '찐 한국인'들에게도 충분히 재미있다.

"제가 이 책을 쓰면서 들은 평가 중 가장 행복했던 게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다 아는 얘기 같은데 왜 재미있지'(김혼비 에세이스트)라는 겁니다. 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실험 같은 걸 해보면 키득키득 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 아는 한국 식당 문화나 매일 먹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은 의외로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책을 읽은 MZ세대 친구가 '이거 MZ세대 타깃으로 쓴 책 같다'고 얘기했어요. 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한국 사회의 모습들, 지금 한국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재밌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젊은 독자들이 많이 봐줬으면 합니다."

남한의 인구 밀도는 1제곱킬로미터 당 500명으로 호주나 아이슬란드 사람 1명이 쓰는 공간을 한국에선 150명이 쓴다, 싱가포르나 홍콩보다 서울의 혼잡도(1제곱미터 당 1만6000명)가 훨씬 더 큰데 한국전쟁이 끝난 폐허에서 인구 1000만 도시로 서울이 성장한 것은 겨우 35년 걸렸다, 한글이라는 과학적인 문자의 발명으로 기본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사회 생활에 필요한 실질 문해율은 전혀 높지 않다, 반도체와 조선업 등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을 갖고 있을 정도로 산업이 발달했지만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일한다 등은 너무나 익숙한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새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원래 박 작가는 한글 원고의 영어 번역을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려 했지만, 이 책은 번역가가 따로 없다.

"굉장히 유명한 번역가를 찾아가 샘플 원고를 보여드렸어요. 그 분께서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이미 계약된 책이 있어서 7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분을 알아볼까 하고 있는데 어느 후배가 '요즘 인공지능 번역 프로그램 잘 나왔다'며 직접 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어요. 저는 딥엘(DeepL)은 그때 처음 들었고, 챗지피티(GPT)는 들어는 봤지만 써본 적도 없었어요. 반신반의하면서 딥엘로 원고를 번역해보니 생각보다 잘 하더라구요. 이후에 챗GPT랑 대화를 하면서 ‘이걸 미국 작가가 쓴 것처럼 좀 더 매끄럽게 고쳐볼래’라고 했더니 또 고쳐주더라구요.

한글 원고는 6개월도 안 걸렸는데, 이걸 영어로 바꾸는 데 거의 1년 가까이 걸렸어요. 딥엘과 챗GPT가 한마디로 하면 '굉장히 유능한데 눈치가 없는 비서' 이런 느낌이거든요. 일을 참 잘하는데 말귀를 못 알아 듣고, 일을 참 잘하는데 꼭 필요한 일 말고 좀 다른 종류의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 번 고쳐야 해요. 영어 원고는 버전7(V7)가지 갔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진 두 분이 인공지능을 통해 번역한 원고를 보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K를 팔기 위한 큰 그림…"<해리 포터>도 200번 거절 당했어요"

박 작가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영문판을 외국 출판사를 통해 출간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를 해봤다고 한다.

"작년 하반기 쯤에 미국, 영국 등 영미권 출판 에이전시와 출판사들에게 샘플 원고와 출간 제안서 등을 보냈습니다. 다 거절 당했죠. 무응답까지 포함해 120번 정도 거절을 당했는데, 조앤 롤링 작가가 <해리 포터>를 200번 거절당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으면서 다시 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박 작가가 인공지능 번역기를 통한 번역과 숱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외국 출판사를 통한 출간을 시도했던 이유는 'K를 팔기 위한' 큰 그림이기도 하다.

"음악, 드라마, 영화 등 K 문화 콘텐츠가 해외에서 다 잘 팔리잖아요. 유일하게 안 팔리는 게 책입니다. 언어 장벽 때문이죠. 안톤 허 등 한국문학 번역가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소수입니다. 한국 소설 뿐아니라 논픽션도 해외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 많지만 번역 작업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거죠.

그래서 제가 인공지능 번역기를 통해 번역한 책을 영미권의 출판사와 직접 계약을 해서 선례를 만들면, 저보다 훨씬 글도 잘 쓰고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가진 작가들이 해외 시장에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번 책 작업을 했습니다. 한국은 출판시장이 크지 않아서 초판을 많으면 3000부 이렇게 찍지만, 미국은 만 단위로 찍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한번 출판을 하게 되면 다음 작가의 출판은 더 수월해지겠죠. 이렇게 해외로 진출한 작가들이 많아지면 한국이 정말 노벨문학상을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박 작가는 또 인공지능 번역기와 1년간 '티키타카'를 한 경험담을 쓴 책이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책에도 밝혔는데 딥엘이 '군만두'를 'military dumpling'이라고 번역하더라구요. 챗GPT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오류를 손보는 등 인공지능 번역기와 정말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재미난 일화가 많아서 제가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출판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몇번 강연을 했어요. 그 강연을 듣고 한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자고 제안을 해서 원고를 쓰다보니 900매가 훌쩍 넘더라구요. 이 원고를 받은 편집자가 자기가 평생 읽어본 실용서 중에 제일 웃기다고 했어요. 정말 웃기게 쓰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연간 해외 관광객 3000만 명 목표는 있는데…

다시 <K를 팝니다>로 돌아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매력을 더할 수 있는 방안을 물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이왕이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운 나라라는 거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스토리 발굴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가서 또 입소문을 내잖아요. 현 정부가 연간 해외 관광객 3000만 명을 목표, 몇년 안에 거의 3배를 늘리겠다고 발표를 했지만 특별한 방안은 안 보이더라구요. 관광업계에 계신 분들이나 국제 행사 하시는 분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외국인들 중에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돼서 한국에 대한 영어로 된 책자를 좀 추천해 달라는 분들이 있는데, 그 때 <론리플래닛> 보세요, 구글링하면 위키피디아에 자세히 나와요, 이런 수준의 답변 밖에 못한다고 합니다. 사실 영문으로 된 여행서는 저 같은 개인 작가가 아니라 정부 기관에서 투자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관심을 갖고 영어로 된 다양한 여행 안내 책자가 만들어지길 바라고, 제 책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깊게 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과 영어 두 언어를 한 권에 묶어 두껍지만 한 언어로만 본다면 비행기 편도 시간에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분량이거든요.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손님들에게 선물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프레시안

▲< K를 팝니다 >, 박재영 지음, 난다 펴냄. ⓒ난다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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