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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 (월)

고추·배추 수확할 때도 기계화율 0%…사람 손만 쓰는 이유 [위기의 국민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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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5월 29일 경북 영천시 금호읍 한 마늘밭에서 열린 '마늘 수확기' 연시회 모습. [사진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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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작물 기계화율 높여라"



지난 5월 29일 경북 영천시 금호읍 마늘밭. 농촌진흥청이 '마을 수확 기계화 재배 기술' 연시회(演示會)를 열었다. 새로 개발한 기계를 작동해 성능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먼저 ‘농산물 줄기 절단기’가 밭을 지나가자 마늘 줄기가 깔끔하게 잘렸다. 이어 ‘수집형 수확기’를 작동하자 땅속에 있던 마늘이 벨트 컨베이어를 타고 올라와 기계와 연결된 자루 속으로 들어갔다.

수집 과정에서 마늘 뿌리에 붙어 있던 흙은 상당 부분 털린 상태였다. 이 장면 본 농민들은 "고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작물인 마늘 농사도 한결 쉬워질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마늘 수확기와 양파 심는 기계의 성능을 개선해 내년부터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작물 생산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가 기계화 영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농 기계화는 주로 마늘‧양파 등 고령층이 농사짓기 힘든 작물을 쉽게 파종하고 수확하는 장비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존 농기구를 대신하는 자동화 장비부터 로봇처럼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는 기계까지 다양하다. 이들 장비는 일부 농가에 보급됐거나 개발이 추진 중이다.

전북 익산시가 지난해 10월 주최한 농기계박람회에선 운전자가 핸들을 조작하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달리는 트랙터가 선보였다. 트랙터가 밭에서 로터리 작업(땅을 갈아엎는 작업)을 마치자 참관자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트랙터는 운전자가 조작하지 않고 직진과 선회, 로터리 작업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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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경북 영천시 금호읍 한 마늘밭에서 열린 '마늘 수확기' 연시회 모습. [사진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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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3단계 장착한 트랙터



이날 박람회에서는 자율주행 무인 방제기와 방제용 드론도 등장했다. 트랙터 시연이 끝나자 자율주행 무인 방제기가 로터리 작업을 마친 밭을 누비며 액체 비료를 뿌렸다. 하늘에선 방제용 드론이 액체를 살포했다. 이날 시연을 나선 드론은 시간당 12㏊ 규모의 밭에 비료를 뿌렸다. 비료는 시간당 1t을 살포할 수 있는 기종이었다. 농기계 업체 관계자는 “사람이 제어하는 트랙터 같은 농기계보다 더 정확하게 작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촌진흥청 기술보급과 김지성 과장은 “농업 인구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상황에서 완전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되면 농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쉬운 기술부터 현장에 적용하고 고도화된 기술도 차례로 접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년마다 주요 밭작물 기계화율을 조사해 발표하는 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2022년 주요 밭작물 기계화율은 콩·감자·고구마·배추·고추·마늘·양파·무 등 8개 작물이 평균 63.3%다. 작업공정별로 보면 경운정지 99.8%, 파종정식 12.6%, 비닐피복 76.9%, 방제 94.8%, 수확은 32.4%다. 파종정식과 수확의 기계화율이 가장 낮은 상황이다.

작물별로는 고추와 배추·고구마 파종정식 기계화율은 0%다. 무는 0.8%, 감자 4.6%, 마늘 14.8%, 양파 16.1%, 콩도 37.2%에 불과하다. 고추와 배추는 수확 기계화율도 0%로 모든 작업을 사람이 작업하고 있다. 무는 10.4%, 양파는 25.8%, 마늘은 43.8%, 콩 46.1%, 고구마 60.1%, 감자 77.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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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경북 영천시 금호읍 한 마늘밭에서 열린 '마늘 수확기' 연시회 모습. [사진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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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파종과 모종을 밭으로 옮겨 심는 정식의 기계화율이 가장 낮은 건 정밀한 작업이 필요해서다. 특히 정식 과정을 기계화하려면 모종 크기가 일정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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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상품화 위해선 기계화 기술 수준 높여야



수확 단계 기계화율이 낮은 건 상품 손상과 관련이 있다. 국립농업과학원은 현재 배추와 고추 등 기계화율이 낮은 작물을 대상으로 수확기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배추는 자르고 수집하는 단계까지 기술이 개발된 상태다. 하지만 상품화를 위해선 지금보다 정교하게 절단하고 상처 없이 수집할 수 있도록 기술 수준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고추도 줄기를 잘라내고 털어서 수확하는 기계가 개발돼 있지만, 5~6회에 걸쳐 수확하는 국내 고추 품종 특성상 당장 농업 현장에 투입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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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전북 익산시 익산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열린 '2023 익산농기계박람회'를 찾은 관람객이 VR을 착용하고 콤바인을 조작하고 있다. [사진 익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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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농업과학원 밭농업기계화연구팀 이상봉 과장은 “농민들이 수확을 사람 손에 의존해오던 작물은 기계로 하면 흠집이 많이 나고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라며 “기계로 수확해도 수확한 품질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기계를 쓸 수 있는 농민 한 명만 있더라도 모든 농사를 다 지을 수 있는 수준까지 농업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박진호ㆍ최종권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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