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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4 (토)

1m 돌덩이와 땅이 통째로 스르르… '땅밀림' 경주서 3곳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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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일반적 산사태보다 최고 100배 위험"
경주 무장·함월·토함산 산사태 피해 73곳 확인
토함산 일대 땅밀림 3곳 "지방도·마을 영향권"
경주시 "계곡 등에 예방시설 사방댐 설치할 것"
한국일보

지난 2018년 10월 6일 경북 경주 양북면 장항리 장항교차로 일대에서 발생한 땅밀림 현상. 박재현 경상국립대 교수는 경주 토함산·함월산 부근은 중생대 백악기 지질로, 흑색 셰일층이 협재해 지질학적으로 땅밀림에 취약한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현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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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일종인 땅밀림은 일반 산사태보다 최대 100배 정도 크게 무너지는 현상입니다. 945번 지방도가 땅밀림 발생지 하단부에서 직선 기준 250m, 계곡 곡선 기준 350m 정도 떨어져 있는데요. 발생지 경사가 35도가 넘고, 무너지는 토사량도 많은 데다 너덜(돌이 많이 깔린 비탈) 지역이라 집중호우 발생 시 작게는 30㎝, 크게는 1m가 되는 돌덩이들과 함께 토사가 순식간에 밀려내려올 위험이 있습니다."(박재현 경상국립대 산림융복합학전공 교수)
한국일보

오른쪽은 경북 경주 황용동 산116번지 중턱에 3,700평대 규모로 '대형 산사태'인 땅밀림 현상이 발생해 회백색 토사가 훤히 드러난 모습. 땅밀림 현상 전문가인 박재현 경상국립대 교수에 따르면 50% 정도 이미 진행된 상황이다. 왼편에는 945번 지방도가 보인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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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토함산 일대 3곳에서 '대형 산사태'인 땅밀림 현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관측돼 이번 여름철 집중호우 시기에 영향권에 놓인 인근 마을과 도로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경고가 나왔다. 상황을 파악한 경주시·산림청 등 관계 기관은 사방댐 설치 등 대책을 마련한 상태인데, 환경단체는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녹색연합은 17일 '경주 대형 산사태 대책 보고서' 등을 통해 토함산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 3개소에 땅밀림 현상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쪽에는 황용동 산116번지 계곡 주변으로 땅밀림 진행 면적이 각각 3,700평·820평 규모인 2개소, 동쪽에는 문무대왕면 범곡리 산286번지에서 1,380평 규모 1개소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국내에서 반경 3㎞ 이내 땅밀림이 3개소까지 집중된 경우는 처음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토함산 3곳서 땅밀림 확인 "마을·도로 영향권"

한국일보

녹색연합은 7월까지 확인된 경북 경주 무장산·함월산·토함산 일대 73개소 산사태 피해지 중 토함산 정상을 중심으로 3㎞ 범위에서 '대형 산사태'인 땅밀림 현상이 3개소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계곡 상하류에 각각 위치한 황용동 땅밀림 발생지 2곳에서 동시에 집중호우 등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산비탈 아래 945번 지방도까지 순식간에 토사가 밀려내려올 수 있어 도로통제 등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녹색연합 주장이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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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동 2곳은 945번 지방도 옆 산비탈에서 진행돼 "집중호우 등으로 동시에 (산사태가) 터지면 토사 상당량이 한 번에 밀려 내려와 도로를 덮칠 수 있다"는 게 녹색연합 판단이다. 범곡리 진행지 1.2㎞ 아래에는 마을과 농경지가 위치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반적인 산사태가 집중호우 등으로 인해 땅 표층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이라면, 땅밀림은 땅속 지하수가 차오르며 물러진 땅이 비탈면을 따라 대규모로 서서히 무너지는 특징이 있다. 평소에는 이동 속도가 매우 느리지만 태풍·호우·지진 등 자연재해 영향을 받게 되면 지반 전체가 무너지며 빠르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일보

경주 토함산 일대인 황용동 산116번지 계곡 주변에 산사태로 인해 단차가 발생한 모습. 2022년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인해 불국사·석굴암 인근 등 경주 일대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으나, 최근까지도 관계 당국이 인지하지 못해 방치됐었다. 올해 5월 녹색연합이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 산사태 위험 실태 보고서'를 통해 산사태 피해지 24곳을 공개한 이후, 관계 부처 합동조사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이뤄졌고 피해지 49곳이 추가로 발견됐다. 경주=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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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전날 녹색연합과 황용동 산116번지를 찾았다. 계곡 초입부터 2022년 9월 '슈퍼태풍' 힌남노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사태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크기가 다른 돌무더기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단차가 발생해 나무뿌리가 훤히 드러났다. 계곡 최하류에서 350m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한 '황용동 발생지1'은 한눈에 봐도 경사가 심했다. 경사가 37도로 스키장 '최상급 코스'보다 심하고, 국내 땅밀림 현장 중에서도 이례적인 급경사지라고 한다.

발생지1로부터 500~600m를 더 올라가면 반대편에 발생지2가 있다. 녹색연합은 "하나의 계곡 유로에 두 곳의 땅밀림이 진행 중인데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대형 산사태 위험 지역"이라고 주장하며 "경상북도와 경주시 소관인 945번 지방도에 대해 도로 및 운전자 안전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방벽 등 구조물 설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범곡리 마을 주변은 흙, 돌 등의 이동을 막는 사방댐이 설치돼 있어 상대적으로 대비가 된 모습이었다.

녹색연합 "집중호우 시 도로 통제해야" 주장

한국일보

녹색연합이 드론으로 촬영한 945번 지방도(위)와 '황용동 땅밀림 발생지1'(아래) 모습. 나무 등 주변 식생이 다 쓸려내려가 회백색 토사가 훤히 드러나 있다. 계곡과 인접한 땅밀림 발생지 하단부에서부터 상단부까지 길이가 200m에 달하고, 범위는 3,700평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박재현 교수는 땅밀림 발생지 전체 토사량을 45만㎥로 추정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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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땅밀림 진행지 3곳은 녹색연합과 경주국립공원사무소 등이 최근 합동 현장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앞서 녹색연합은 지난 5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주변 등 토함산 일대에 방치된 산사태 피해지 24곳이 있다며, 방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후 현장조사를 통해 함월산과 무장산 정상부 일대에서 피해지 49곳을 추가 확인, 총 73개소가 파악된 상태다.

이 지역 산사태 대응 관계기관인 환경부·산림청·경상북도·경주시·국립공원공단 등은 이달 1~3일 모여 합동대책을 마련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범곡리 일대에 현재 사방댐 4개가 설치되어 있고 내년에 추가로 2개를 설치할 계획"이라며 "945번 지방도 인근 계곡부에도 사방댐 설치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또 계곡 주변 상황 모니터링을 위해 폐쇄회로(CC)TV 설치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다만 우천 시 도로 폐쇄 기준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 바 없다고 했다. 녹색연합은 '시간당 20㎜' 비가 관측되면 사고 예방을 위해 통행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림청은 당초 올해까지 '전국 땅밀림 위험지도'를 작성할 계획이었으나 아직도 관련 연구 진행 단계인 것으로 확인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매년 땅밀림 위험지를 2,000곳씩 조사 중인데 현재까지 전국에서 우려지 184곳이 확인됐다"며 "잠재 위험도 평가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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