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비 더 심각… "냉면도 못 사 먹어"
"최저시급 핑계로 가격 올릴까 겁나"
14일 서울 시내 할인마트에서 산 재료로 만든 된장찌개. 재료비에 9,700원을 썼다. 서현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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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이 올해 9,860원 대비 170원(1.7%) 오른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37년 만에 처음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 원을 넘겼지만 서민들은 웃지 못한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밥상 물가 탓이다. 최저임금이 몇백 원 오르는 사이 밥값은 더 올라 최저임금이 밥 한 끼 가격도 안 된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과연 1만30원으로 밥 한 끼, 어디까지 먹을 수 있을까.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할인마트에 들러 된장찌개 재료를 샀다. 재료 선택의 기준은 무조건 마트에서 가장 싼 것으로 정했다. 마트에서 몇 걸음 떼지도 않고 채소만 골랐는데 금세 1만 원에 육박했다. 감자 4개 1,000원, 깐 양파 2개 2,000원, 대파 한 단 2,300원, 애호박 1개 1,800원, 두부 한 모 1,600원, 청양고추 10개 떨이 1,000원. 3,000원짜리 청양고추를 뒤로 한 채 시들해 보이지만 저렴한 고추를 손에 들었고 두부 역시 평소보다 할인된 제품을 골랐건만 벌써 9,700원이었다. 다진마늘(8,500원)과 육수용 멸치(5,500원)는 포기해야 했다. 차돌박이가 들어간 된장찌개는 언감생심. 그나마 된장이 집에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마트에서 만난 직장인 박서윤(37)씨는 "요즘엔 무조건 '원 플러스 원' 행사 상품이나 할인하는 품목을 고르게 된다"고 말했다.
삼시세끼를 포기한 채 집에서 만든 된장찌개로 두 끼를 때우고 여기에 쌀값을 일부 포함한다고 가정하면 최소한의 하루 식사비가 1만 원. 하루 8시간 근무한다고 가정할 때 일당(8만240원)의 12%가량을 쓴 셈이다. 여기에 교통비와 통신비, 월세·관리비·공과금 지출 등 필수 생활비를 계산하니 벌써 지갑이 얇아진 기분이다.
1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다. 서현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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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인근 식당을 둘러보니 외식은 더욱 꿈도 못 꿀 지경이었다. 대학가인 신촌에 있는 한 한우국밥집에 들어서니 1만 원 아래 메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우국밥과 한우곰탕 모두 1만1,500원. 유명 프랜차이즈 김밥도 원조김밥이 4,300원에 달했다. 참치김밥은 5,500원이라 최저임금으로는 두 줄도 사 먹을 수 없었다. 대학생 신윤이(20)씨는 "한 끼에 1만 원에서 1만5,000원 정도는 쓴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 가운데 외식 가격은 전년 같은 달 대비 3% 올랐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이 내놓은 지난달 서울 외식 가격은 △냉면 1만1,923원 △비빔밥 1만885원 △김치찌개 백반 8,192원 △삼겹살 1만6,692원 △자장면 7,308원 △삼계탕 1만6,885원 등이었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가 최저임금이 결정되자 "일하며 사는 사람들의 노동가치가 냉면 한 그릇만도 못하냐"며 반발한 배경이다.
9일 서울 시내 음식점 밀집 지역에서 한 시민이 길을 걷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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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폭이 물가 인상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은 고용 감소나 외식비 상승 등의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대학생 김모(26)씨는 "최저시급이 오르면 그만큼 물품 가격에 반영돼 외식값이나 생필품값이 오를 것 같다"고 걱정했다. 직장인 박지현(39)씨도 "임금이 오르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이걸 핑계로 식당이 가격을 올리거나 같은 가격으로 양을 줄일까 겁난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임대료 부담까지 안게 된 자영업자들도 고통스럽긴 매한가지다. 마포의 한 김밥집 주인 유모(63)씨는 "재룟값도 인건비도 오르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내는 돈까지 오르니 어쩔 수 없이 또 음식 가격을 인상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최저임금 1만 원 시대, 서민들의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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