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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0 (화)

[사설]‘36주 낙태 영상’ 수사, 낙태죄 입법 공백·혼선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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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소속 활동가가 지난해 4월9일 낙태죄 폐지 2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구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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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튜버가 임신 9개월(36주) 만삭 상태에서 올린 ‘임신중지’ 영상을 두고 ‘태아 살인’이라며 논란이 커지자, 15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아 임신중지가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 보니, 정부가 살인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이 산모와 수술 의사에 대한 사법적인 판단과 별개로, 또 한번 우리 사회가 임신중지권을 둘러싼 갈등에 맞닥뜨렸다.

문제가 된 영상에서 20대 여성 A씨는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A씨가 지난달 말 유튜브에 게시한 이 영상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져나갔고, 누리꾼들의 거센 비판이 뒤따랐다. 급기야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경찰에 A씨와 A씨 수술 의사에 대한 수사 의뢰 진정을 넣었다.

물론 ‘어떻게 만삭에 임신중지를 할까’ 비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뒤집어 보면, 국회의 직무유기로 수많은 여성이 고통받는 임신중지 문제가 다시금 불거진 것이다. 이 영상 수사 논란도 임신중지권 논의를 후퇴시키기보다는 관련 입법을 서두르는 계기가 돼야 한다.

헌재는 2019년 임신중지를 모두 처벌하는 건 헌법에 맞지 않다며 2020년 12월31일까지 법을 손보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록 정부와 국회는 제대로 된 논의없이 팔짱만 끼고 있었다. 그 결과, 임신중지를 둘러싼 법·제도적 공백이 빚어지고, 의료 현장의 혼선이 커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사자들이 떠안고 있는 상황이 됐다.

지난 3월 프랑스는 헌법에 여성의 ‘임신중지 자유’를 세계 최초로 명시했다. 앞으로도 어떤 정부가 권력을 잡더라도 임신 14주까지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현행법을 고치지 못하도록 못 박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임신중지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관한 관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국회 논의가 제자리걸음인 것도 임신중지에 대한 허용 기준을 놓고 여야의 시각이 다르고,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일부 종교계를 의식해 좌고우면한 탓이 크다. 지금이라도 국회는 헌재 결정의 취지대로 임신중지 보장을 반영한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함께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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