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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이슈 로봇이 온다

정작 주무부처가 모르는 장애인 '돌봄로봇'의 가치 [그림자 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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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주 기자]

서울 '동작구 지체장애인 쉼터'가 AI 돌봄로봇을 도입했다. 지체장애인 쉼터 사상 최초다. 쉼터를 안내하는 자율주행 로봇 1대와 정서적 교류가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 4대를 도입했는데, 이용자는 물론 복지사의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로봇은 장애인 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가 지원한 게 아니다. 복지부는 지금까지 '장애인 돌봄로봇 정책'을 논의한 적 없다. 돌봄로봇에 한계가 뚜렷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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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인 이혜윤씨가 휴머노이드 로봇과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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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미니!" 이름을 부르자 반뼘짜리 얼굴을 돌리고 눈을 마주친다. 화답하듯 파란색 눈을 깜빡인다. 서울 '동작구 지체장애인 쉼터' 이용자들은 요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ㆍhumanoid) 알파미니에 푹 빠져있다. 지난 6월 18일 전국 지체장애인 쉼터 최초로 동작구에 들여온 25㎝ 높이의 인공지능(AI) 로봇이다.

척추장애 판정을 받은 이혜윤(63)씨는 알파미니를 향해 "찬송가를 틀어달라"고 말한다. 찬송가 제목을 말하면 척척 틀어준다며 로봇을 자랑하고 쓰다듬기도 한다. 이씨는 "척추에 심을 7개 박은 상태라 밖에 나가기 불편하고, 안에 있으면 답답했다"면서 말을 이었다. "쉼터에 나와 귀여운 로봇과 이야기하니 재밌기도 하고 웃을 일도 많아졌어요." 알파미니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춤춰봐"라는 말만 떨어지면 춤사위를 펼친다. 어쩔 땐 팔굽혀 펴기를 하고 방귀를 뀌는 모션도 취한다.

이 쉼터에 휴머노이드(총 4대)만 있는 건 아니다. 자율주행 로봇 '크루저'도 1대 있다. 쉼터의 현관문을 열면 1m 높이의 크루저가 "지체장애인 쉼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며 사람들을 맞아준다. 쉼터에 들어온 이용자가 "안아줘"라고 말하면 로봇팔을 높이 들어 그를 꼭 안는다. "체조해"라고 하니 발랄한 음악에 맞춰 빙빙 돌며 팔을 쭉쭉 뻗는다. 크루저의 재롱에 쉼터 이용자 10여명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이외에도 크루저는 체력 단련실, 스크린 파크골프장, 화장실 등 쉼터 곳곳으로 이용자를 안내하고 동작구의 복지정책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김민성 사회복지사는 "일이 바쁘면 이용자 한명 한명을 응대하지 못했는데, 로봇들이 이용자들을 맞아주니 만족도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휴머노이드 시대가 열리면서 장애인ㆍ고령층을 돌보는 '돌봄로봇'이 곳곳에 배치되고 있다. 이 로봇의 임무는 정서적 교류, 24시간 모니터링, 위생 관리, 식사 지원 등 다양한 돌봄을 수행하는 거다. 돌봄 수혜자의 일상을 지원하고 자립을 돕는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활용도가 매우 높다. 신용순 한양대(간호학) 교수는 "지체장애가 있는 이들은 식사보조, 배설, 이동보조, 욕창예방 등에 돌봄로봇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돌봄로봇의 수요는 우리나라에서만 커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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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로봇이 로봇팔을 들어 쉼터 이용자를 안아주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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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로봇을 비롯한 글로벌 서비스로봇 시장 규모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글로벌 서비스로봇 시장규모가 2021년 46조원에서 2026년 129조원으로 3배가량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지체장애인이 돌봄로봇을 사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공공의 지원에 한계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장애인 대상 돌봄로봇 지원 현황은 9개 수요처(쉼터ㆍ장애인복지관 등)에 로봇 15대가 전부다.

그중 한곳이 '동작구 지체장애인 쉼터'인데, 이곳은 지난 4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서 주관하는 '간병로봇 지원사업(예산 7000여만원ㆍ국비 50%구비 50%)'에 선정돼 돌봄로봇을 도입했다.

그렇다고 장애인만을 위한 돌봄로봇 사업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추진하고 있는 '간병로봇 지원사업'의 대상은 고령자, 장애인 등으로 범위가 넓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엔 돌봄로봇 사업 자체가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 돌봄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돌봄로봇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정책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돌봄로봇의 보급을 확대하더라도 남은 문제들이 숱하다. 현재 보급돼 있는 돌봄로봇의 역할은 정서적 지원이나 재활 보조에 머물러 있다. 법적 문제로 의료 기능은 수행할 수 없다.

돌봄로봇에 생체 모니터링 등 의료 기능이 들어가면 '의료기기'로 분류되는데, 여기서 기인할 수 있는 책임 소재 등을 규정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의사가 원격으로 환자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진료하는 원격진료도 금지돼 있으니, 돌봄로봇의 역할은 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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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원격진료 서비스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전문가들이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를 적용하거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참고: 규제 샌드박스란 신제품이나 새로운 기술, 새로운 서비스 등을 론칭했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일컫는다.]

김경식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이사는 "현재 지원하는 로봇은 '반려로봇'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정서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생체 모니터링 등 의료적인 부분을 살필 수 있는 돌봄로봇이 더 필요하다. 돌봄로봇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정책적 노력을 수반할 필요가 있다." 돌봄로봇은 언제쯤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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