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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소 여물로도 안 가져가요" 망연자실한 부여 수박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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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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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해 피해 본 수박밭 바라보는 오 모 씨


"열흘만 있으면 출하하는 거였는데…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나네요."

어제(11일) 오후 충남 부여군 부여읍의 한 수박 재배 농가 농장주 오 모(67) 씨는 10일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를 본 뒤 하릴없이 농막에 앉아 시설 하우스를 바라봤습니다.

한쪽에는 비료 포대가 나뒹굴고 있고, 하우스 입구는 밀려든 진흙으로 질퍽질퍽했지만, 손쓸 엄두도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10일 새벽 부여에 시간당 106.0㎜의 역대급 폭우가 쏟아지면서 오 씨의 비닐하우스 18동 가운데 15동(9천900여㎡)이 물에 잠겼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밭 사이 고랑에는 일부 물이 고여 있고, 수박 잎은 모조리 흙으로 뒤덮여 수마의 위력을 짐작게 했습니다.

날이 개자 물을 머금은 수박 잎이 햇볕을 흡수하면서 타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오 씨는 "밤을 새우며 배수펌프를 돌리고 삽으로 계속 퍼 올렸는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면서 "새벽 3시부터 심상치 않더니 물이 종아리 높이까지 금세 차올랐다"고 전했습니다.

수박밭 바로 옆에 1m60㎝ 높이의 배수로도 있었지만, 역류하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는 "작년에는 배수장이 고장 나서 비닐하우스가 꼭대기까지 잠겼는데, 올해는 정상 가동이 됐는데도 200년 만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집중호우에는 소용이 없더라"고 전했습니다.

줄기마다 매달린 수박은 적게는 7㎏에서 크게는 9㎏ 가까이 완전히 자란 상태였고,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었는데도 모조리 폐기해야 할 처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물이 찬 피수박은 두드려보면 안다. 맑지 않고 둔탁한 소리를 내는데, 수확을 하더라도 일주일만 지나면 금세 썩어서 못쓰게 돼버린다"며 "소여물로나 쓸 수 있는데, 8천t 가까이 되는 수박을 일일이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더 커서 가져갈지 모르겠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재해보험에도 가입했지만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오 씨는 "작년에 실제로 보상이 산정된 금액은 실제 피해액의 3분의 1에 불과했다"며 "내가 키운 씨 없는 수박의 경우 젖순을 딸 때부터 수정시킬 때까지 한 뿌리당 사람 손으로 9번의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그동안 들인 인건비도 못 건진다"고 토로했습니다.

지난해에는 하우스마저 모두 망가지는 바람에 차라리 트랙터로 갈아엎을 수 있었지만, 올해는 일일이 거둬들여야 해 복구작업마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는 "수박 농사를 지은 지 7년 정도 됐는데, 두 번 연속 침수 피해를 봤다"면서 "하우스를 안 지으면 보상을 못 받는다고 해서 작년에 억지로 뼈대를 다시 세우고 비닐을 씌워 올리기는 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수박 농사를 이어갈지는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지난 3일간 부여의 평균 강우량은 322.8㎜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양화·임천·세도면에는 사흘 동안 450㎜의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벼·수박·멜론·토마토 등 농작물 피해는 1천464㏊(728개 농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는 대조사 뒷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사찰로 흙이 떠내려오는 등 지역 문화재 3곳이 피해를 봤고, 교량·제방이 붕괴하고 주택과 상가 28개동이 침수됐습니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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