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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드골 때 만든 결선투표, 佛 극우집권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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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프랑스 좌파 연합 내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가 7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에서 총선 2차 투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양팔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이날 치러진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는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극우 정당을 누르고 1당 자리를 차지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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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유럽의회 선거 승리로 촉발된 프랑스 조기 총선에서 대이변이 벌어졌다. 지난달 30일 1차 투표에서 33%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던 RN과 그 연대 세력이 7일 결선 투표 때 총 577석의 하원 의석 중 143석을 얻어 3위 정당에 그쳤다. “극우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프랑스 유권자의 표심, 또 이를 주도한 기성 정당들의 선거 전략이 먹힌 결과다.

8일 프랑스 내무부의 개표 집계 결과 이번 조기 총선의 승자는 1차 득표율 2위였던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이었다. 1차와 2차 투표를 합쳐 총 182석을 얻으며 1당으로 등극했다. 1차 때 득표율 3위에 그쳤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 중도연합 앙상블은 168석을 확보해 원내 2당으로 내려앉았다.

프랑스 주요 매체들은 “좌·우를 하나로 묶은 반(反)극우 ‘공화국 전선’이 RN을 권력 문턱에서 끌어내렸다”고 평가했다. 프랑스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한 후보가 없으면 1·2위 후보 및 해당 선거구 등록 유권자의 12.5% 이상 지지를 받은 후보들이 2차 결선을 치른다. 결선 투표제는 1958년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주도로, 극단주의 정당의 권력 장악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결선 투표가 없었다면 RN이 240~280석을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만세! 공화국 만세!” 프랑스 조기 총선 2차 투표가 종료된 7일 오후 8시, 출구 조사 결과가 일제히 발표되자 파리 시내 곳곳의 광장과 카페, 술집에 모여 초조하게 TV를 바라보던 시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은 대부분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에 반대하는 좌파와 중도파 유권자들이다.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에 나와있던 쥘-알베르(33)씨는 “프랑스는 아직 죽지 않았다. 자유·평등·박애라는 대혁명의 정신, 공화국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외쳤다.

RN의 패배에 주요 언론들은 “충격적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RN과 그 연대 세력(공화당 내 RN 지지파)은 1차 투표에서 33%의 지지율을 얻으면서 단번에 37개의 의석을 확보했고, 400여 개 선거구에서 결선에 진출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이를 바탕으로 RN 측이 240∼270석, NFP가 180∼200석, 범여권 앙상블이 60∼90석을 차지하며 RN이 압도적 1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좌파연합은 예상 의석을 그대로 지킨 반면, RN의 의석은 예상치의 반 토막이 됐다. RN의 실질적 지도자인 마린 르펜은 지난 총선 때보다 의석이 50석 이상 늘었다는 점을 부각하며 “우리의 승리가 늦춰졌을 뿐 패배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가브리엘 아딸 프랑스 총리가 7일(현지 시각) 치러진 프랑스 조기 총선 결선 투표 출구 조사 결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을 포함한 범여권이 2위를 차지했다는 결과가 나오자, 프랑스 파리 총리 관저에서 "내일 아침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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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의 돌풍을 잠재운 것은 프랑스 정당들과 국민들의 반극우 연대, 이른바 ‘공화국 전선’의 성과였다. 1차 투표 결과 280여 개 선거구에서 RN 후보와 NFP·앙상블 측 후보자들이 3자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반극우 표가 분산되면서 RN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자 후보 단일화를 위한 과감한 좌·우 합작을 이루며 RN을 저지했다.

RN의 집권을 간신히 막기는 했지만 임기가 2027년까지인 마크롱 대통령은 국정 운영이 난항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일간 르피가로는 “어느 정당도 과반(289석)을 못 넘기며 정국 주도를 못 하는 상황”이라며 “새 총리를 임명하려 할 경우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가 장관들을 대통령에게 제청해 내각을 꾸린다. 의회는 이에 대해 내각 불신임안으로 총리를 실각시킬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선 3개 당 중 어느 당에서 총리 후보를 내더라도 의회에서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차기 총리 후보로 가장 유력한 것은 원내 최대 정당 NFP의 리더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다. 그는 “우리는 통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한편 마크롱이 야권의 반발을 무릅쓰고 원내 2당이 된 범여권 내에서 총리를 임명할 가능성도 있다. 60여 석을 가져간 공화당 등 우파 세력을 껴안고 사회당 등 NFP 내 중도 좌파 세력과 손을 잡으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라는 분석이다. 범여권은 2022년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도 과반에 미달한 245석을 얻으면서 사안에 따라 공화당 등과 손잡아 왔다. 범여권의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이날 “앞으로 의회에서 공화당과 더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8일 일단 사직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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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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