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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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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이 나서길 잘했네”…44년만에 ‘죄인’ 누명 벗은 노병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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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간첩 공격안했나” 징역형
실제론 간첩에 소총사격 대응
당시 대법도 무죄로 봤지만
계엄령 탓에 법적 대응 못해

檢총장 비상상고로 최종 무죄


매일경제

대법원 전경.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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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을 보고도 공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인으로 살아 온 노병(老兵)이 44년만에 오명을 벗게 됐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비상상고를 제기한 덕분이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군 형법 위반(공격 기피 등) 혐의로 1980년 육군 고등군법회의(2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된 A(67)씨의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확정했다.

대법원은 당시 고등군법회의의 환송심 판결이 상급심 판결의 기속력(구속력)에 관한 법리를 위반했다며 이원석 검찰총장이 제기한 비상상고를 인용했다. 비상상고는 이미 확정된 형사 판결에 명백한 법령 위반이 발견됐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사건을 다시 심리해달라고 신청하는 비상구제절차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978년 10월 휴가병 3명을 사살하고 북한으로 복귀하는 무장간첩 3명을 마주친 육군 7사단 일병이던 A씨는 이들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1심인 보통군법회의는 A씨에게 무기징역을, 2심인 고등군법회의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은 A씨가 소총 사격으로 대응한 사실이 있는 등 고의로 적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1979년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환송심인 고등군법회의는 대법원의 판단을 따르지 않고 A씨에게 징역 3년을 다시 선고했다.

A씨의 2차 상고를 받아 든 대법원은 1980년 이 판결을 재차 무죄 취지로 파기했지만 고등군법회의는 다시 이를 무시하고 징역 3년 판결을 내렸다.

A씨는 다시 상고하고자 했지만, 1979년 10월 내려진 비상계엄이 발목을 잡았다. 계엄령으로 군인에게 상고권이 제한된 것이다. A씨의 3년형이 확정된 이유였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이를 바로잡고자 나섰다. 이 총장은 2022년 11월 8일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하급심 판결이 기속되기 때문에 하급심인 고등군법회의는 기초가 된 증거관계에 변동이 없는 한 대법원의 파기 이유와 달리 판단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제기했다. A씨는 이로써 44년만에 ‘죄인’이라는 멍에를 벗게 됐다.

대검찰청은 “A씨의 명예 회복과 피해보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비상상고를 제기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 사례”라며 “향후 A씨의 형사보상 절차에 적극 조치하고, 앞으로도 준사법기관으로서 국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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