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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일사일언] 식물학자 칼 린네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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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국립세종수목원.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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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정원 견학의 하이라이트는 칼 폰 린네(1707~1778)의 정원이었다. 식물 작명법을 만든 식물학자 정도로 알 수도 있지만, 그의 업적에 대해 “신은 만물을 창조했고, 린네는 만물을 정리했다” 했을 정도로 생물학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스톡홀름에서 기차를 타고 40분 만에 웁살라에 도착했다. 웁살라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처럼 도시 전체가 대학으로 가득 찬 곳이다. 여기에 그의 식물원이 있다.

린네는 어린 시절부터 식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당시 식물학이 별도로 없었기 때문에 식물을 배울 수 있는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말년에는 귀족 작위를 받고 교수로서 영광도 누렸지만, 그의 젊은 날은 가난하고 험난했다. 그는 오로지 식물에 대한 공부에 몰두했다. 말을 타거나 걸어서 유럽 최북단 지역인 라플란드 지역을 탐험했다. 추위에도 살아남는 식물들을 수집하고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식물학 공부를 위해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해외를 떠돌았다. 이러던 그가 드디어 교수직을 얻은 곳이 웁살라 대학이었다. 처음으로 식물학 공부를 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었다.

스승이었던 루드백 교수가 만든 식물원으로 아예 주거를 옮겨 직접 식물을 심고 관리했다. 규모는 작아도 그 안에는 다년생, 일년생, 수생 식물, 열대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온실을 두어 식물을 유전적으로 분리해 키우며 관찰했다. “여기 식물 중에 명찰을 달고 있지 않은 식물은 없습니다.” 안내를 맡은 대학원생 정도로 보이는 친구의 설명에서 자랑스러움이 넘쳤다. 린네는 이 식물원에 종종 제자들을 초청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트윈플라워가 그려넣어진 식기로 식사를 대접했다. 학생들에게 식물 공부를 하라고 부추길 목적이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 갈 때의 막연한 설렘과는 달리 고마움과 기쁨이 뒤섞여 꿈을 꾸듯 아련했다. 요란한 장식도 화려한 디자인도 없이 그 작은 정원은 과학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식물학자의 꿈과 열정을 오롯이 말해주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가 이런 열정과 꿈에 의해 변화되고 있음에 뭉클한 고마움을 느낀다.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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