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제1회 대전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며 대전역을 지나고 있다. 최예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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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 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무지개색 펼침막을 앞세운 천여명의 행렬이 성심당 케이크부티크 앞을 지날 때였다.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지자, 대오를 이룬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무지개색 스카프를 두른 채 행렬 맨 앞에 선 개신교 목사들도 함께 노래했다. 선두 차량에 탄 진행자가 “퀴어가 뭐시여?”라고 묻자 참가자 모두 “사랑이쥬!”라고 소리쳤다. 대흥동 성당 계단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명관 베네닉토 주임신부가 그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대전 원도심을 메운 건, 사랑이었다.
지난 6일 대전 원도심에서 열린 ‘제1회 대전퀴어문화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활짝 웃고 있다. 최예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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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대전 원도심에서 열린 ‘제1회 대전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는 ‘차별 없는 모두의 축제’ 본연의 모습을 지키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날 오전 11시 대전 동구 소제동 전통나래관 앞에서 시작된 축제의 분위기는 밝고 활기찼다. 전국퀴어문화축제연대·비온뒤무지개재단, 레인보우스토어, 퀴어굿즈라온, 행성인·모두의결혼, 성소수자 부모모임, 내다(학교를 무지개로 물들이자), 홍익대·성균관대 성소수자모임, 에일리언즈·퀴어욕망실천연대,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충북대 성소수자모임, 여성인권티움, 빈들공동체교회·큐앤에이,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등 27개 부스가 행사장을 채웠다. 간간이 행사장 밖에서 ‘혐오 발언’이 들려오면, 참가자들은 야유 대신 더 큰 소리로 손뼉 치고 환호했다.
빈들공동체교회와 성서대전 등의 개신교 목사 11명이 지난 6일 대전 원도심에서 열린 ‘제1회 대전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에게 축복기도를 하며 꽃잎을 날리고 있다. 최예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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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장에서 만난 대전시민들은 “이제 대전도 퀴어축제의 도시”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퀴어축제는 처음이라는 김민선(27·대전 유성)씨는 “모든 사랑은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전에서 첫 퀴어축제가 열린다고 해 왔는데, 이렇게 힙할지(밝고 신선할지) 몰랐다. 낡은 원도심에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걸 보니 흐뭇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처음으로 퀴어축제를 찾은 박유미(36)·유민(34)씨 부부는 “벚꽃이 피니 벚꽃축제를 하듯이 우리 곁의 성소수자가 있으니 그들과 함께 이런 축제를 열고 즐기는 거라고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도시로 가서 참여하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는데, 드디어 대전에서도 퀴어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력에 날짜를 적어뒀다”고 했다.
지난 6일 대전 원도심에서 열린 ‘대전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이장우 대전시장에게 쓴 엽서들. 이 시장은 지난달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전퀴어문화축제와 관련해 “대중 앞에서 (퀴어)축제가 열리면 상당한 시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무조건 반대한다. 그분(성소수자)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공개적으로 여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조용히 하는 것이 맞다”고 발언한 바 있다. 최예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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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에서 온 참가자들은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된 대전퀴어축제 모습에 놀라워했다. 서울에 사는 홍아무개(37)씨는 “서울퀴어축제와 달리 덜 혼잡해서 쾌적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어 색다른 매력이다. 혐오세력 방해도 서울에서보다는 극렬하지 않아서, 진짜 대전이 살기 좋은 곳인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참가한 박민제(24·서울)씨도 “대전에 온 건 오늘이 처음인데, 양반의 도시라더니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분들도 다른 지역에 비해선 정말 점잖은 것 같다”며 웃었다.
오후 1시부터 진행된 개막식에선 연대발언과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싱어송라이터 유진솔·미루의 노래에 이어, 지구(노래)·지용(춤)이 ‘우리 여기 있어’라는 제목의 퍼포먼스 공연을 했다.
임최도윤 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위원장이 지난 6일 대전 원도심에서 열린 ‘제1회 대전퀴어문화축제’ 개막식에서 연대발언을 하고 있다. 오는 13일 제주에서도 ‘제5회 제주퀴어프라이드’ 축제가 열린다. 최예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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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3일 ‘제5회 제주퀴어프라이드’ 축제를 앞둔 임최도윤 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위원장은 무대에 올라 “대전까지 이제 전국 10개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거나 열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엔 퀴어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만연하고, 많은 퀴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거나 공공연한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거리에 나와 사람으로서 존엄과 권리·자긍심을 말하며 성소수자도 인간답게 살게 되기를 외치고 있다. 우리의 다름은 틀리지 않았다. 다름을 틀리다고 말하며 차별과 혐오를 자유로 포장하는 사회가 틀린 것”이라고 소리쳤다.
지난 6일 오후 대전 원도심에서 ‘대전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뒤로 대전의 대표 빵집인 성심당 케이크부티크가 보인다. 최예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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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퀴어축제에선 빈들공동체교회와 성서대전 등의 개신교 목사 11명이 참가자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무지개 축복식’도 열렸다. 목사들은 “이 시간 간절히 비오니, 교회에서 상처받고 쫓겨난 모든 이들과 성소수자 길벗들이 그 모습 그대로 우리들의 새로운 식구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입맞춤이 주는 힘으로 사랑의 관계를 되찾게 하소서. 우리가 모여 함께 울고 웃고 떠들썩하게 춤추며 즐거움을 나누는 이 자리를 참사랑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오니,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삶에 사랑과 우정이 넘쳐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참가자들 머리 위로 꽃잎을 뿌렸다.
지난 6일 오후 대전 원도심에 있는 대흥동 성당의 오명관 베네닉토 주임신부가 성당 앞을 지나는 ‘대전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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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거리행진은 소제동에서 시작해 대전역·중앙로·옛충남도청·성심당을 지나 대흥공원에서 마무리됐다. 퀴어축제 행렬을 본 시민들은 차·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기도 하고, 몇몇은 행진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날 경찰은 안전한 축제 진행을 위해 경찰 인력 1280명을 투입했다. 거리행진을 시작할 때 혐오 세력이 길을 막아서자 대전경찰청 관계자는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이니, 모두의 안전을 위해 비켜달라”고 알린 뒤 길을 텄다.
박선우·무무 대전퀴어문화축제 집행위원장은 “대전에선 첫 퀴어축제라 700명만 참여해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훌쩍 넘어 1300여명이 함께해 우리도 놀랐다. 무엇보다 별 탈 없이 평화롭게 축제를 마무리해 기쁘다”며 “안전한 축제 진행을 위해 고생해주신 경찰분들께도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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