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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운동과 학업을 왜 병행하나... 고교 야구 전성시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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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강성곤의 뭉근한 관찰]

운동과 학업을 왜 병행하나

고교 야구 전성시대가 그립다

조선일보

1997년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신일고 야구부./조선일보DB


고교 야구 전성시대가 그립다. ‘성동원두(城東原頭·성 동쪽 들판이라는 뜻)는 흥분의 도가니~, 열광의 도가니~’ 자지러지던 아나운서 중계 멘트가 다시 듣고프다. 우뚝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뿌듯하다가도 서울운동장 야구장 추억에 자꾸만 아쉽다. 모교에 야구부가 있다는 건 자부심이었다. 전국 대회 우승이라도 거머쥐는 날엔 엑스터시가 따로 없었다.

경북고⸱광주일고⸱선린상고⸱경남고⸱군산상고⸱대구상고⸱부산고⸱인천고⸱동산고⸱중앙고⸱덕수상고⸱신일고⸱충암고⸱북일고 등이 펼친 명승부는 쉬 잊기 힘들다. 대략 197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학생 스포츠로 온 국민의 관심과 성원을 만끽한 종목은 고교야구가 유일할 터. 지금은 어떤가. 청룡기⸱봉황기⸱황금사자기 대회가 언제 있는지, 아직 하는지 모를 정도다. 운동장에 가면 관중석에 학부모와 늙수그레한 아저씨들만 삼삼오오 모여 있다. 원인은 뭐고 어떤 대책은 없을까?

10여 년 전부터 선수들은 오전엔 교과 수업을 듣고, 오후에만 운동을 할 수 있다. 또 매주 토⸱일요일에 주말리그 형태로 예선전을 치른다. 운동하는 학생들을 위한다는 정책으로 보통 사람은 쉬거나 놀아야 할 주말에 몰아서 경기를 시키는 게 모순 아니고 무엇인가. ‘전인교육’ ‘학업과 운동의 병행’ 등 짐짓 숭고한 교육 이념 아래 지⸱덕⸱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자는 명제는 옳다. 그러나 운동선수가 국⸱영⸱수를 해야 한다면 공부 벌레들에게도 체육 시간을 독려하고 강제했어야 한다. 과연 그랬으며 그리하고 있는가.

운동 반 교과 수업 반. 그래서 둘 다 잘하게 한다는데 결과는 반대다. 공부도 별로고, 운동도 시원치 않다. 경기력은 확실한 하향 추세다. 선수⸱감독⸱학부모 모두 시무룩한데 당국은 무심하다. 김연아⸱손흥민이 만약 이런 시스템의 적용 대상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스트라이커 손흥민의 지금 위상은 학교 체육의 맹점을 간파하고 극한 개인 훈련을 묵묵히 이겨낸 덕이다. 고교생 때, 학교 측이 배려한 수차례의 러시아 전지훈련이야말로 피겨퀸 김연아의 고단백 자양분이었다.

조선일보

고교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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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체육과 생활 스포츠의 경계는 무엇인가. 프로와 아마의 차이로 일반화해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달 말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에 대한민국은 금메달 5~6개로 15위가 목표라고 한다. 눈과 귀를 의심했다. 이른바 ‘텐-텐’, 즉 금메달 10개로 10위 이내 진입이 상시 목표 아니었나? 국격(國格) 운운하고 싶진 않으나 참담하다. 아테네 올림픽 탁구 챔피언, 유승민 IOC 선수위원의 말.

“학교⸱학력⸱공부와의 균형? IOC에선 그런 얘기 안 한다. ‘당신만의 특별한 경험과 커리어는 무엇인가’ 이런 게 중요하다. 올림픽 메달에 인생을 거는 건 동서양이 같다. 체육 특기생이 강훈련하는 것과 명문대 가려고 죽어라 공부하는 학생이 뭐가 다른가. 국내 교육 체계가 학생 선수를 전문가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게 문제다. 운동선수가 다른 분야에 적응 못 할 것이라는 프레임이 안타깝다. 학생이 방학⸱주말에 시합하는 게 타당한가. 인권 정신에도 어긋난다. 스포츠도 교육이다.”

3승 4패. 참가국 여섯 중 4위. 지난 도쿄 올림픽 한국 야구의 성적이다. 실력도 근성도 부재한 치욕이었다. 우리끼리 즐기고 환호하는 프로야구 인기가 무색하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언제나 강호였던 대한민국은 2008년 이래 우승이 없으며 현재 랭킹은 3~5위권이다. 선수들에게 공부를 강요한 시기와 그대로 겹친다.

고교 야구 활성화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선 선수 수급 문제. 중3 때 원하는 학교 야구부를 1지망부터 10지망까지 쓰고, 내신 등 학업 자료를 종합해 추첨으로 배정하고 있다. 팀 전력을 고르게 한다며 언필칭 공정성과 형평성을 담보하는 방식이란다. 학교와 감독은 열심히 유망주를 발굴하고 학생⸱학부모는 원하는 야구팀을 지망하는 자율⸱경쟁 기제와는 거리가 멀다. 알루미늄 방망이 대신 나무 배트를 고집하는 것도 의문. 성장 중인 선수들은 힘차고 과감한 스윙이 기본인데 나무는 반발력이 작아 공을 정확히 맞히는 데만 주력하게 된다. 미국⸱일본은 전통대로 금속 배트를 쓰건만 우리는 석연치 않게 바꿔버렸다. 투수들은 역으로 과대평가된다. 무엇보다 ‘비(非)수업일수 허용제한선’이라는 이름의 숨 막히는 수업 의무 참가일을 폐지하거나 학교 재량에 맡기는 게 급선무다. 교육부와 문체부, KBO와 KBSA(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등이 머리를 맞댈 일이다. 공부 못해서 운동한다는 시대는 진즉에 지났다. 손흥민⸱김연아의 영어 실력과 인터뷰 수준을 보라. 선택의 영역이다. 높으신 관료 나리, 말만 앞세우는 몽상가들만 모르고 있다.

제79회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지난 2일 개막했다. 휑하고 적막한 운동장, 더는 안 된다. 방망이의 금속성(金屬聲)과 관중들의 환호성이 어우러지는 축제 마당이라야 마땅하다.

[강성곤 KBS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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