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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의사와 환자의 관계, 국가의 의료시장 개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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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식 기자]
라포르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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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의사와 환자는 사적 계약 관계인 만큼 시장에 맡겨야 하며, 국가 권력의 개입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창립 22주년을 맞아 지난 4일 의협회관 대강당에서 '현 의료사태에서 정치와 법률의 문제'를 주제로 의료정책 포럼을 개최했다.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등 일방적이고 비과학적인 정책발표로 시작된 작금의 의료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정책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는 젊은 의사와 의과대학생에 대한 억압과 폭거가 도를 지나쳤고, 각종 행정명령이 남발됐다"고 말했다.

안덕선 원장은 "이번 의료사태가 정부의 아집대로 끝이 난다면 대한민국의 의료뿐 아니라 교육과 법치, 정치 등 모든 사회 영역에 적신호가 켜질 것"이라며 "국민 건강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여러 가치들을 다시 한 번 올바로 세워보기 위해서 이번 포럼이 큰 의미를 갖길 기대한다"고 했다.

첫 발제를 맡은 이화의대 권복규 교수는 현 의료사태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권력의 문제를 조명했다. 특히 권 교수는 의사와 환자는 사적계약에 따른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권 교수는 "기본적으로 의사는 의료를 취미나 시혜, 봉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업을 통해 돈을 버는 직업인"이라며 "국가와 많은 국민들은 의사가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한다. 자기가 정당하게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게 과연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와 의사는 기본적으로 사적 계약 관계로, 국가는 환자가 누구에게 치료받을 지를 지정할 수 없으며 의사 또한 국가의 지정을 받아 치료할 수 없다"며 "계약에 따라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고 의사는 자기가 아는 최선의 지식과 기술로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한다는 것이 원초적인 개념이다. 여기에 국가가 들어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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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대 권복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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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역시 국가의 개입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권 교수는 "진료비는 의사와 환자 두 당사자의 사적 계약의 산물이다. 진료비는 서비스 비용적인 면과 리워드(사례)라는 이중적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예컨대 환자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사에게 굉장히 많은 보상을 주더라고 해도 이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1950~1960년대에는 치료를 받으면 집을 한 채 줬다는 환자들도 있었고, 가난한 환자에겐 닭 한 마리, 달걀 한 줄, 쌀 한 말만 받고 치료를 해주기도 했다"며 "이런 것들은 의사가 환자의 형편을 봐서 조율을 하는 것이지, 이 부분에 누군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오늘날조차도 국가와 자율적 전문가 집단과의 관계가 제대로 설정이 돼 있지 않다는 것이 아주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국가권력의 의료 개입은 전근대적 역사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권 교수는 "1944년에 조선의료령이 만들어졌는데 조선 총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의료 관계자에게 2년 이내에서는 조선 총독이 지정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있게 하고, 의료 관계자에게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며 "문제는 1951년 국민의료법을 만들 때 조선의료령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의료인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 통제방식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국민의료법에는 주무부 장관이 의료업자에게 2년간 지정 장소 지정업무에 종사할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의료업자에 대해 의료보건 시책 상 필요한 지도 및 명령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권 교수는 "당시 내과 의사이자 제2대 국회의원이었던 이용설 선생은 '평화 시에 의사에게만 2년간 지정 업무 종사령을 내리는 건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라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주무부 장관의 명령 하에 의사의 거주권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으며 명령을 위반할 때는 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한다는 구절을 국민의료법에 넣었다"고 전했다.

지금도 여전히 전근대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은 아플 때, 제때, 제대로 된 치료 받는 게 복지의 핵심이고 국가의 헌법상 책무라고 말했는데 의사의 재산권이나 직업 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은 헌법상의 권리가 아닌가, 의사는 국가의 헌법상 책무 앞에서 무력화되는 가치인가"라며 "전시나 심각한 보건 위기 상황이 아닌데 명령을 남발하는 이 국가의 모습이 민주주의보다는 전체주의 모습을 띄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우리는 여전히 전근대적 사회에서 살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아직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며 "불투명하고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결정을 해도 권력자가 밀어붙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민주주의 가치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의협 허지현 법제이사(법률사무소 해소 대표변호사)는 현 의료사태에서 정부의 법적 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전공의들에 대해 발령된 업무개시명령, 진료유지명령 등을 중심으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및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해 현 사태에서 발생하고 있는 헌법적, 행정법적 문제를 살펴봤다.

허지현 법제이사는 "헌법 제15조는 직업 선택의 자유 및 직업 수행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전공의들이 휴직 또는 사직하거나 특정한 이유로 업무를 거부할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직업의 자유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며 "그러므로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진료유지명령은 전공의들이 자신의 직업적 선택에 대한 자유, 직업 수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 법제이사는 "전공의들에 대한 정부의 제한이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비레성 원칙을 충족해야 하며, 이는 입무개시명령이 필요성과 최소 침해 원칙을 준수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며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진료유지명령이 필요한 조치였는지, 그리고 전공의들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침해하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업무개시명령이 과도한 제한으로 평가될 경우 비례성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진료개시명령의 절차적 정당성도 문제로 꼽았다.

허 법제이사는 "명령 발동 전에 전공의들과 충분한 협의 및 조정 여부, 적절한 의견 수렴 절차의 진행 여부 등 업무개시명령 및 진료유지명령 등으로 전공의들의 헌법상 기본권 및 근로자로서의 권리 등을 제한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하지만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지했을뿐 사전에 의료계와 별도로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지거나 협의와 조정 과정 등을 가진 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들의 잇따른 사직은 정부의 위 정책이 내용상으로 부당하고 절차적으로도 의료계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됐다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이런 이유로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의료법에 근거해 업무개시명령과 진료유지명령을 내렸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해당 명령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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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현 의협 법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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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령의 적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필요성과 최소침해 원칙을 준수했는지 여부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지현 법제이사는 "업무개시명령이나 진료유지명령이 발령되기 전 다른 대안이 있는지, 해당 명령이 전공의들의 기본권을 최소한으로 침해하는 방법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관련 절차를 거친 적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훼손된 절차적 정당성이나 의료인의 기본권 침해 등의 문제는 추후에라도 의료인, 환자, 정부 간 이해관계와 권리 충돌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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