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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무궁화가 피었습니다…22대 국회선 법으로 ‘국화’ 인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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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의 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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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미국 버지니아 비엔나 주택가에 핀 무궁화.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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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현지 시각) 월요일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집 문 앞에 무궁화가 활짝 피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범 워싱턴 DC 지역인 버지니아 비엔나에 있는 이 집은 지난 2월초 워싱턴 DC 조지타운대 방문연구원으로 오면서 우연히 구한 타운하우스입니다.

임대인은 한국과 별 관계가 없는 백인 미국인입니다. 집 앞뜰에는 튤립 등 여러 꽃이 심겨 있습니다. 그 가운데 무궁화 나무 한 그루가 떡 하니 심겨 있는 줄은 최근까지도 몰랐습니다.

부모님이 지난 5~6월 이곳에 오셨다가 “이거 무궁화네”라고 알려주시고 나서야 화단에 반듯하게 서 있는 잎사귀 무성한 나무가 무궁화인 걸 알았습니다. 꽃봉오리도 안 맺힌 상태로 있다 보니 미국인 집에 무궁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 살면서 무궁화를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라일락이나 목련, 벚꽃, 튤립, 장미 등은 거리에서 자주 보고, 아파트 단지에서도 거닐다 쉽게 만져봤지만, 무궁화는 만져본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그런 무궁화를 미국에서 만났습니다. 6월 말 꽃봉오리가 맺히더니 7월초 만개했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핀 무궁화를 타국에서 마주하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이 집과 운명적인 만남은 평생 잊지 못할 듯합니다.

이날 한국 생각에 뉴스를 검색해보니 요새 22대 국회에서 여러 법안을 내고 있었습니다. 21대 국회 때 악명 높았던 법이죠, 임대차 3법 같은 악법 법안도 보였습니다. 시선 좀 끌려고, 정쟁 싸움에서 이기려고 하는 등 불순한 의도로 가득 찬 법안도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온 국민의 일상으로 직결되는 법을 이렇게 손쉽게 만들고 바꿔도 되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무궁화가 국화로 법 제정조차 되어 있지 않은 사실을 아십니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우리 애국가 후렴에는 무궁화가 들어가 있습니다. 대통령 휘장,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배지, 법원 휘장에도 무궁화가 나라의 상징으로서 형상화돼 있습니다. 국가 최고의 훈장 이름도 ‘무궁화대훈장’입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았다고 합니다. 동양 최고(最古) 지리서 ‘산해경’에는 ‘북방에 군자국이 있어 무궁화가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진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신라 효공왕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는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이라 부른 기록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궁화는 일본 강점기 때도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의 표상으로 삼았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도 나라의 상징으로 무궁화가 사용됐습니다.

당연한 것처럼 무궁화가 국화로서 사용되고 있지만, 법적 근거는 놀랍게도 없는 상태입니다. 태극기는 국기법으로, 나라 도장인 국새와 나라 문장은 대통령령으로 제정돼 있는데, 무궁화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국화 법제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6대 국회 때부터 ‘대한민국 국화에 관한 법률안’ ‘국가상징에 관한 법률안’ 등의 이름으로 무궁화를 국화로 제정하자는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그러나 매번 흐지부지됐습니다.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법안이 폐기됐습니다.

21대 국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임대차 3법 같은 악법은 일사천리로 처리하면서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일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국화 제정은 뒷전으로 미룬 것입니다. 일부는 무궁화가 이북 지역에서는 보기 어렵다, 볼품이 없다는 등의 말로 국화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폅니다. 거짓된 정보로 폄하도 합니다.

품종이 너무 많아 국화로 정하기 애매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무궁화보다 품종이 더 많은 장미를 국화로 제정했습니다.

22대 국회 들어 여야가 각각 반도체 관련 재입법에 속도를 내는 데 대해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무궁화 국화 법안도 과거 여야 의원들이 고루 냈었습니다.

이날 무궁화를 바라보면서 22대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국화꽃이 되길 바랐습니다. 이 법안을 내서 통과시킨 의원은 두고두고 높이 평가받지 않을까요?

더불어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을 기념하는 계기가 있을 때 미 측에 무궁화 나무를 선물해 워싱턴 D.C. 6·25전쟁 참전 용사 기념관 등에 자리 잡도록 해도 뜻깊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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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노석조 기자·조지타운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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