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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악보 반대로, 새 음표 넣기 ‘임윤찬식 해석’…“논쟁적”-“기분 좋은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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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6월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독주회에서 연주하는 모습. 목프로덕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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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는 지난달 국내 8차례 독주회를 도전과 실험으로 채웠다. 20대에 접어든 그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마음껏 풀어낸 공연이라 향후 음악 행로도 가늠해볼 수 있는 무대였다. ‘해야 하는 음악’ 대신 ‘하고 싶은 음악’을 내세운 그는 악보에 얽매이지 않는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연주를 펼쳐냈다. 전문가들은 ‘음표 너머’를 추구하는 임윤찬의 성취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일부 애정이 어린 우려도 내놓았다.



원래 발표한 프로그램은 쇼팽 연습곡이었다. 지난 4월 발매한 첫 음반 ‘쇼팽:에튀드’에 담은 곡들이다. 미국과 일본 리사이틀에서도 이 곡들을 들려줬다. 그런데 국내 순회 리사이틀을 1개월 남짓 앞두고 돌연 프로그램을 변경했다. “지금까지 해야 하는 음악을 했다면 이번엔 정말 하고 싶은 곡을 연주하겠다”는 임윤찬의 의지에 따른 결정이었다. 기존에 했던 곡들을 연주하는 편한 길 대신, 새로운 곡들로 채워야 하는 어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 이번 독주회는 ‘하고 싶은 음악’을 향한 여정의 출발점으로 보인다.



그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고른 곡들은 멘델스존의 ‘무언가’ 마장조(Op.19-1)와 라장조(Op.85-4), 차이콥스키의 ‘사계’(Op.37b), 그리고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이다. 세 작품 모두 형식이 자유롭고 연주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곡들이다. 곡들의 묶음과 연결을 통해서도 그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 보였다. ‘무언가’ 두 곡과 ‘사계’의 1∙2월을 이어서 연주하더니, 3월~6월, 7월~9월, 10~12월로 끊어쳤다. 12개 소품으로 이뤄진 ‘사계’를 4개 단락으로 재구성해 사계절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꾸몄다. 이번 독주회는 ‘스토리텔러 임윤찬’의 면모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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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6월17일 부천아트센터에서 독주회를 마치고 걸어나가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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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람회 그림’ 연주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이소영 음악평론가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는 듯한 충격과 전율을 느꼈다”며 “너무나 도발적이어서 논쟁을 일으킬만한 연주”라고 했다. 이 평론가는 무엇보다 악상 기호의 파격을 꼽았다. 피아니시모(매우 약하게)를 포르테(강하게)로, 데크레셴도(점점 약하게)를 크레셴도(점점 세게)로 치는 등 작곡가의 지시와 반대로 연주하거나, 새로운 음표를 삽입해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소영 평론가는 “임윤찬 버전 악보가 따로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임윤찬은 원곡 악보와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편곡 버전을 참고하되,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붙여 연주했다고 기획사 쪽은 전했다.



임윤찬이 이뤄낸 성취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허명현 평론가는 “임윤찬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연주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는 “부분적으론 파격이 많았는데 전체 연주를 들어보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아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소영 평론가는 “과거의 노래는 다 잊고 이제 새로운 노래, 새로운 서사를 쓰자는 선포이자 피아니스트 계보사에서 신인류의 탄생을 확인하는 현장이었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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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6월17일 부천아트센터 독주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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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연주자에게 허용되는 악보 해석의 자유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기관 전문가는 “작곡가의 음악적 뉘앙스와 다르게 접근했고, 지나치게 과장한 부분도 많았다”며 ”정석으로 연주해 온 피아니스트들에게선 불편하다거나 당혹스러웠다는 얘기도 나오더라”고 전했다. 피아노 교습 현장에서도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있다고 서울의 한 음대 교수도 전했다. 이소영 평론가는 “‘전람회의 그림’ 연주가 전 세계 클래식 팬들에게 영상으로 공개된다면 적잖은 논쟁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임윤찬이 의미 있는 논쟁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는 “원곡 자체가 뼈대는 굵고 텍스트는 단순한 곡이라 연주자에게 허용된 해석의 폭이 넓은 편”이라며 “작곡가의 의도와 그림에 대해 임윤찬이 치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흔적이 엿보인다”고 했다.



임윤찬은 이달부터 스위스와 미국, 영국, 스페인, 그리스, 폴란드 등지에서 독주회와 협연 무대를 번갈아 선보이며 자신만의 음악적 실험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엔 그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은 음악’으로 꼽은 바흐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한다. 김주영 피아니스트는 “임윤찬은 스스로를 실험의 한 가운데로 집어 던지며 차근차근 자신을 닦아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아직 스무살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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