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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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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서서히 멈추는 車... ‘급발진 맞나’ 논란에 전문가 의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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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일 오후 9시 30분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사고를 낸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이 연기를 내며 멈추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놀라 몸을 피하고 있다. /연합뉴스TV


1일 13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시청역 인근 인도 돌진 교통사고 가해 차량 운전자 차모(68)씨가 급발진을 주장했다. 하지만 사고 직후 가해차량이 횡단보도 앞에서 서서히 멈추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급발진이 맞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급발진 가능성은 제로”라는 의견과 “일부 장면만 보고 급발진 여부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신중론으로 나뉘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1일 오후 9시 3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검은색 대형 승용차를 운전하는 차씨가 보행자를 쳐 9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다.

운전자 차씨는 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100% 급발진”이라며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으나 차량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차씨는 “운전을 오래 했고 현직 시내버스 기사”라며 “갑자기 차량이 튀어 나갔다”고 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이날 브리핑에서 “사고 원인이 급발진이라는 것은 피의자의 진술뿐”이라며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사고 차량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사고 직후 서서히 멈춘 가해 차량 영상... 목격자들 “급발진 맞나”

2일 연합뉴스TV에는 사고 직후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제보자는 “남편이 (현장 인근에서) 유턴 신호를 받고 있었다고 해서 블랙박스를 확인해 봤다”며 “(사고 차량이) 멈춰 서는 장면이 담겨 있어 제보했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에는 사고를 낸 차량이 사고 직후 감속하면서 멈추고, 갑자기 다가오는 차량에 놀란 시민들이 급히 몸을 피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모습을 본 네티즌들은 일반적인 급발진 의심 사고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엑스(X)에 “브레이크 밟고 차를 세우는데 급발진?”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급발진이라기엔 차가 너무 부드럽게 멈춘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시민 역시 연합뉴스에 “급발진은 절대 아니었다”며 “급발진을 할 때는 (차량 운행이) 끝날 때까지 박았어야 했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멈췄다”고 했다.

그동안 급발진으로 의심받는 사고 차량들은 통상 도로 위 가드레일이나 전봇대 같은 구조물과 부딪힌 뒤 속도가 줄어 멈추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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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경남 함안의 한 도로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 /JTBC '한블리'


지난 4월 경남 함안의 한 도로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 역시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이 굉음과 함께 앞차를 밀어내며 폭발적으로 질주하는 모습이 담겼다. 치솟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역주행까지 하며 곡예 운전을 하던 차량은 결국 전봇대를 충돌한 후 전복되며 멈췄다.

◇엇갈리는 전문가 의견… “급발진 가능성 제로” VS “소프트웨어 결함 가능성”

전문가 역시 가해 차량이 서서히 속도를 낮춰 인도에서 멈추는 모습이 일반적인 급발진 사례에서 보인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 교수는 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급발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했다.

염 교수는 “급발진은 급가속이 이뤄진다. 차량이 구조물을 추돌 또는 충돌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는다. 보통 급발진 차량들은 차량의 전자장치 이상으로 인해 오히려 가속이 붙는다”며 “차량이 정상화돼서 속도가 줄거나 운전자가 차량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시 전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이어 “급발진 차주들은 브레이크를 밟아도 브레이크가 딱딱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브레이크가 밟아지지 않기 때문에 제동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며 “결국은 요리조리 차량과 보행자를 피하다 보면 구조물에 받혀서 속도가 멈추게 된다. 받히더라도 차량이 뱅글뱅글 돌거나 전복된다.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염 교수는 “급발진보다는 운전자의 어떤 부주의나 실수, 미숙 등으로 사고 원인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역주행으로 진입해 당황한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 페달을 헷갈려서 가속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동승자와의 다툼으로 인해 역정이 난 운전자가 홧김에 들어가는 사고도 과거 종종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다만, 차량이 멈추는 장면만으로 급발진 여부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있다. 2022년 12월 발생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피해자 측 변호를 맡은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는 2일 조선닷컴에 “차량 소프트웨어 결함이 발생하면 운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속 명령을 내려 급발진이 발생한다”며 “이러한 소프트웨어 결함을 막는 예방 장치로 차량 시스템을 정기적으로 리셋(reset)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하 변호사는 “사고 차량이 인도를 들이받은 후 충격에 의해 소프트웨어가 리셋되면서 다시 정상적으로 브레이크 장치 작동이 이뤄졌을 수 있다”며 “정확한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잘못으로 페달 오조작이 이뤄졌을 때 차량의 가속도와 사고 당시 차량의 속도 데이터를 비교‧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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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에서 한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로 파손된 차량이 현장에서 견인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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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차량은 사고 직전 웨스틴조선호텔을 빠져나와 일방통행인 4차선 도로를 역주행하다가 BMW와 소나타 차량을 차례로 추돌했다. 이후 횡단보도가 있는 인도 쪽으로 돌진해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들을 덮쳤다. 이 차량은 사고 이후에도 100m가량을 더 이동한 뒤에야 건너편에 있던 시청역 12번 출구 앞에서 멈춰 섰다. 역주행한 거리는 모두 200m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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