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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란 대선, 개혁파 예상 밖 선두… 5일 강경 보수 후보와 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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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과 대화·히잡 단속 완화”로 돌풍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강경 보수 후보가 낙승하리란 예상을 깨고 무명에 가까운 개혁파 정치인이 1위로 결선 투표에 진출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국제적 고립에 날로 심화하는 경제난,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누적된 체제에 대한 불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선거는 지난 5월19일 헬기 추락으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후임을 뽑기 위해 치러졌다.

지난 29일 이란 내무부는 전날 치러진 대선 투표 결과 총 4명의 후보 중 개혁 성향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전 보건장관이 42.5%로 최다 득표자가 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서 강경 보수 성향의 사이드 잘릴리 전 이란 핵 협상 대표가 38.6%를 득표해 2위를 했다. 과반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1·2위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하는 이란 대통령 선거법 규정에 따라 두 사람은 이달 5일 열리는 결선 투표에서 다시 맞붙게 됐다. 당초 유력 후보였던 공군 사령관 출신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13.8%의 낮은 득표율로 탈락했다.

이로써 2021년 이후 3년 만에 이란 대선에서 보혁 대결이 벌어지게 됐다. 대선에서 결선 투표를 치르는 것은 2005년 이후 19년 만이다. 1·2위 간 득표율 차이가 3.9%포인트에 불과해 결선 투표에서 보수 표심이 뭉치면 잘릴리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선거에 대한 냉소로 투표장을 외면했던 청년층과 개혁 지지 세력이 대거 투표에 나서면 판세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대선의 유권자는 총 6145만여 명이지만 총투표 수는 2453만여 표로 최종 투표율은 40.3%에 불과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의균


지난달 9일 총 6명의 대선 후보가 발표됐을 당시, 인지도가 낮은 페제시키안이 유일한 개혁 성향 후보로 지목되자 서방은 물론 이란 내에서도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강경 보수 지도층이 선거가 민주적으로 진행됐다고 선전하려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를 들러리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제시키안이 서방과 대화를 통한 경제난 해소, 히잡 강제 착용 반대 및 단속 완화,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여성·청년을 중심으로 지지세가 모였고, 하산 로하니와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 등 개혁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지지 선언도 이어지며 본격적인 세몰이가 시작됐다. 6월 14일 발표된 첫 여론 조사에서 3위였던 페제시키안은 24일 선두로 급부상한 이후 5번의 조사에서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위기를 느낀 강경 보수 세력이 투표일 직전 후보 단일화에 나섰으나 결국 페제시키안을 꺾는 데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 표심은 갈리바프가 아닌 잘릴리를 선택했다. 갈리바프가 단판 승부를 예상하고 중도 유권자까지 노리며 상대적으로 온건한 정책을 내세운 반면, 잘릴리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강경 보수 정책을 택해 선명성 경쟁에서 승리했다.

결선에서 맞붙게 될 페제시키안과 잘릴리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인물이다. 페제시키안은 아제르바이잔 출신 아버지와 쿠르드족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이란 사회의 비주류다. 군 복무 후 의대에 늦깎이로 입학, 심장외과 전문의가 됐고 타브리즈 의대 총장을 지냈다. 1997년 하타미 대통령 시절 정치에 입문해 보건 장관을 지내고 이후 타브리즈에서 5선을 했다. 지난 2021년 대선에 도전장을 냈으나 헌법수호위원회 심사에 탈락해 출마하지 못했다.

반면 잘릴리는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인 이란의 주류 보수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어 ‘살아있는 순교자’로 불린다. 시아파 이슬람 정치 사상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하다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란 핵 협상 수석 대표를 맡아 자국의 핵 주권을 역설했고, 하메네이의 정책기획 수석을 거쳐 최고국가안보회의 서기를 역임하는 등 하메네이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이번이 대선 3수째다.

국제사회는 이란에 다시 개혁 성향 정권이 들어서는 ‘선거 혁명’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로이터와 CNN 등은 “이란의 권력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에게 집중되어 있다”며 “개혁파 대통령이 당선돼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란과 미국·서방 간 대립이 일부 해소되고 경제 제재가 완화하는 것만으로도 이란 내 정치 역학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과정에서 각각 러시아와 하마스·헤즈볼라·예멘 후티 등을 지원해 온 이란의 태도 변화로 이어지며 세계 정세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란 정치제도

이란의 정치 체제는 ‘이슬람 공화국’이다. 종교가 지배하는 신정(神政)과 민주주의의 요소가 결합한 독특한 형태로, 종교 지도자인 국가 최고지도자(아야톨라)와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이 따로 존재한다. 실질적 권력은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돼 있고, 대통령은 실무적 행정 수반 역할을 한다. 1979년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 이후 이와 같은 통치 구조가 확립됐다. 1989년부터는 알리 하메네이가 국가 최고지도자를 맡고 있다.

군대와 사법부, 국가 안보 기구 등 권력 기관의 인사권과 통제권은 최고지도자의 몫이다. 종교 지도자로서 이슬람 법의 해석과 적용에 대한 최종 권한도 갖는다. 입법 심사, 헌법 해석, 대통령 후보 자격 심사 등 강력한 권한을 가진 헌법수호위원회도 최고지도자의 영향하에 있다.

대통령은 내각을 임명하고, 정부의 일상적 정책을 수립 및 실행한다. 경제 정책은 대체로 대통령이 수립·실행한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면서 외교 정책도 주도하지만 대체로 실무적인 부분에 한정된다. 주요 외교 정책의 최종 결정권은 최고지도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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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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