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가 진열돼 있다. 50여년간 정치인과 공무원으로 생활하며 겪은 일을 정리한 김 전 의장의 회고록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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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처음엔 울면서 숨으려고만 했어요. 극우 유튜버가 왜 그런 말을 코앞에서 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희생자 이남훈씨 어머니 박영수씨)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내용이 담긴 ‘김진표 전 국회의장 회고록 논란’이 불거진 뒤, 유가족들은 가장 먼저 참사 이후 극우 유튜버·단체와 여당 국회의원에게 당했던 2차 가해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떠올랐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당시 발언이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이 각종 2·3차 가해에 동조한 셈”이라며, ‘조작’ 발언의 진실 여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30일 ‘10·29 이태원참사 기억·소통공간’ 주변에서 한겨레와 만난 박씨는 김 전 의장 회고록 내용을 보고, 지난해 7월25일 헌법재판소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기각 결정이 나온 날을 떠올렸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박씨 앞에서 극우단체는 ‘이태원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외치는가 하면, ‘이렇게 좋은 날’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비명을 지르고 쓰러진 박씨는 “사람이 무서워” 두세달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박씨는 2022년 11월22일 유가족들의 첫 기자회견에서 “더는 눈물만 흘리는 무능한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음모론과 혐오 앞에 약속을 지키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는 “윤 대통령이 했다는 발언을 보고 정부 대응에도 그런 태도가 깔린 것이 아닌가 의구심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극우 유튜버·단체의 행동을 보며 “그들이 국가 최고 권력인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며 “대통령의 발언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정부 또한 이들의 2·3차 가해를 방관하고 유가족의 목소리는 듣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 위원장은 희생자들의 ‘마약 투약 의혹’을 제기했던 여당 국회의원 등도 언급하며 “정치인들이 나서서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부가 묵인하지 않았다면 마구잡이로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김 전 의장이 대통령 발언을 왜곡했다고 반박했지만,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의문이 해소되기에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28일 논평을 내어 “참사 수습 과정에서 정부가 유류품 마약 검사부터 하고 부검을 권유했다든지, 유가족들 간의 만남 요구를 외면했다든지 하는 등의 행태를 보인 이유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키울 뿐”이라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참사 이후 극단적인 음모론과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 또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라고 짚었다. 공무원에게 ‘근조’ 글씨 없는 검은 리본을 달게 하거나 행정안전부가 재난 원인 조사를 하지 않는 등 참사 이후 정부의 석연찮은 대응과 그 배경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참사 직후 극우 유튜버들이 저보고 ‘북한에서 온 아나운서 같다’거나 ‘지한이가 아들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그때 정말 힘들었다”며 “윤 대통령이 그런 의견에 동조한 것인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발언 진위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류석우 한겨레21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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