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30 (일)

볼리비아 대통령 ‘쿠데타 자작극’ 논란…주모자 “장갑차 꺼내올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볼리비아에서 26일 쿠데타를 주모한 혐의로 체포된 후안 호세 주니가 전 육군 사령관이 이날 경찰에 의해 호위를 받으며 정부의 사건 발표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볼리비아에서 3시간 만에 진압된 쿠데타가 현 대통령의 자작극이란 논란이 일면서 정국에 깊은 혼란 속으로 빠지고 있다.



볼리비아 정부는 27일(현지시각) 군사 쿠데타 혐의로 후안 호세 수니가 전 육군 사령관과 후안 아르네스 해군 사령관 등 16명의 장교와 대학교수 1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에두아르도 델 카스티요 내무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들이 지난 5월부터 반란을 모의했다며 “이번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3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카스티요 장관은 방송과 회견에서 정부는 ‘소프트 쿠데타’ 움직임이 군 내에 있다는 정보를 받았으나, “전날 대통령궁 주변에서 벌어진 형태의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볼리비아 안팎에서는 이번 쿠데타가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이 부진한 지지율을 올리고 국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는 의혹이 떠돌고 있다.



쿠데타 주모자인 수니가 장군은 현장에서 체포되면서 아르세 대통령이 기획했다고 말했다. 수니가 장군은 아르세가 앞서 “나의 인기를 올리는 것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수니가 장군은 “내가 그에게 ‘우리가 장갑차를 꺼내와야만 하나요?’라고 물었다”며 “그는 나에게 ‘그것들을 꺼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급속히 퍼지면서 쿠데타의 배후에 아르세 대통령이 있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리아 프라다 대통령 보좌관은 기자회견에서 수니가 장군의 발언은 “그가 실패한 쿠데타의 주모자로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지막 연극”이라고 반박했다. 프라다 보좌관은 쿠데타를 주모한 수니가 장군의 자백을 담은 조서를 들어서 반박했다. 프라다는 수니가 장군이 수사관들에게 쿠데타에 참여하기로 한 군과 경찰 수뇌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수니가 장군이 아르세 대통령의 지지자였고, 고작 200명의 병력만 동원한 데다, 방송이나 통신 시설도 장악하지 않고, 대통령궁에서 아르세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철수한 정황 등이 겹치면서 쿠데타 자작극 주장이 더 힘을 얻는 모양새다.



쿠데타 세력이 대통령궁에 진입했으나, 이에 맞서는 아르세 대통령 명령에 철군하는 장면 등이 소셜미디어에서 떠도는 것도 대통령의 단호함을 선전하려는 기획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르세 대통령은 수니가 장군에게 “군 지휘체계를 존중하고 좋은 군인이면, 당장 모든 병력을 철수하라”며 “이건 명령이다”고 말했다. 이에 수니가 장군과 병력들은 대통령궁에서 철수하고, 이후 수니가 장군은 체포됐다.



쿠데타 시도 전 수니가 장군의 행적도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수니가 장군은 쿠데타 이틀 전인 24일 친정부 방송에 출연해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 아르세 대통령을 각료로 발탁하고, 그의 대통령 당선을 도왔으나, 관계가 악화됐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 출마를 모색 중이다.



수니가 장군은 모랄레스 전 대통령에게 “권력에 굶주린 거짓말쟁이”라며 “그런 사람은 이 나라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전날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수니가 장군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수니가 장군이 이 방송에 출연한 뒤 면직됐고, 그 다음날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 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2006년 집권 이후 진보적인 좌파 정책으로 빈곤 감소와 경제성장을 이루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4선 출마를 금지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2019년 대선에 출마해 선거 조작 논란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망명했다. 하지만 1년 뒤 대선에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 소속 아르세 후보가 당선되면서 귀국했다. 여전히 볼리비아에서 인기가 높은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아르세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자 다수 여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선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볼리비아는 아르세 대통령 취임 이후 국가의 주요 수입원인 천연가스 매장량이 바닥나고, 세계에서 가장 매장량이 많은 리튬 개발도 부진하면서 국가 재정이 바닥난 상태이다. 가스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했고, 모랄레스 전 대통령 재직 시절 줄어든 빈곤과 빈부 격차가 다시 늘어나는 등 경제난을 겪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