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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흔들린 믿음·분열하는 공동체…신학 논쟁, 우리 사회를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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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크리스천스’

목사 문제적 발언에 교회 갈등

교인들 떠나도 신념은 안 굽혀

종교 넘어 묵직한 메시지 선사

두산아트센터서 7월 13일까지

20년 전 상가 건물에서 시작한 작은 개척 교회를 수천 명 교인을 둔 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목사 폴(박지일). 온 교인이 합심해 10년 만에 교회 빚을 다 갚자 ‘축복의 날’로 선포하며 작심했던 설교를 한다. “이 교회에 금이 간 부분을 고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건물을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든지 간에 (교회 공동체는) 무너져 내릴 겁니다”라며 자신이 기도 중 들었다는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지옥은 없다”라고.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담임 목사가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자 교회 내부는 혼란에 빠진다. 기독교 신앙의 근간인 구원(천국)과 심판(지옥)에 대한 믿음을 뒤흔든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부목사 조슈아(김상보)와 일부 교인이 격하게 반발하며 떠나도 폴은 개의치 않는다. 급기야 독실한 평신도 제니(박인춘)에게 “세상에 끔찍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살면서 행한 모든 죄가 다 깨끗이 씻겨지는 게 천국 아니냐”며 히틀러도 천국에 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 교인 숫자가 급감해 교회가 위기에 몰려도 그는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사람들의 이해 부족 탓으로 여긴다. 하지만 평생 우군이라 믿었던 아내 엘리자베스(안민영)와 장로 제이(김종철)마저 등을 돌린다.

세계일보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크리스천스’는 신학적 논쟁으로 긴장감이 넘치지만 특정 종교의 울타리에만 가둬둘 수 없는 이야기다. 사진은 ‘크리스천스’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지난 25일 개막한 연극 ‘크리스천스’는 신학적 논쟁으로 긴장감이 넘치지만 특정 종교의 울타리에만 가둬둘 수 없는 이야기다. 가족·조직·지역사회·국가 등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어떻게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고 파국으로 치닫는지, 이를 방지하거나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곱씹게 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과 입장은 헤아리지 않은 채 특정인 등 소수가 자신의 신념을 무작정 밀어붙이는 불통의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완벽한 너그러움’을 추구하던 폴이 조슈아를 비롯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교인들이 떠나는 걸 반기면서 “나무가 더 잘 자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가지치기도 필요한 거니까”라고 합리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아내 엘리자베스가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라고 꼬집을 때도 그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다 다른 사람을 위한 거야”라고 항변한다. 극 마지막, 혼자 외롭게 남아 왜 이렇게 됐는지를 돌아보는 폴의 표정이 안쓰럽다.

‘크리스천스’는 종교인이든 아니든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연극이다. 해외 평단을 사로잡았던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원작을 민새롬이 연출해 2018년 국내 초연한 뒤 6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 이번에 돋보이는 건 십자가 모양의 무대와 객석을 하나의 예배당처럼 꾸며 몰입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폴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공연 내내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박지일 등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기도 하다. 다만 안민영이 연기한 엘리자베스는 조금 아쉽다. 평생 사랑하고 신뢰한 남편의 배신에 누구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고 마음이 복잡할 텐데도 표정과 대사가 너무 건조하고 사무적으로 비친다. 폴에 대한 존경이 실망과 분노로 바뀐 제니의 심정이 관객에게 와닿은 것과 비교된다.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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