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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남자가 뭔 죄” “남자라 특권”...훈련병 사망 사건으로 다시 불붙은 젠더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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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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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방법원은 지난달 강원 인제 육군 제12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박모(20)씨가 군기훈련(얼차려) 도중 사망한 사건과 관련, 여군 중대장(대위)과 남군 부중대장(중위)을 21일 구속했다. 신동일 영장전담 판사는 이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두 사람은 훈련병들에게 얼차려를 주는 과정에서 규정을 위반해 박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여군 지휘관에 의한 얼차려 도중 남성 훈련병이 사망한 이번 사건에 2030 남성은 분노했다. 살인적 취업 경쟁의 한복판인 20대 한창 나이에 병역 의무를 감수해야 하는 징병제 현실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울분·좌절을 정통으로 건드린 사건이란 분석이 나왔다.

대학생 서모(26)씨는 “학점·토익·인턴을 다 챙겨도 18개월(육군 기준)을 군대에서 복무하고 나오면 2~3년은 그냥 붕 떠버린다”며 “또래 여성들과 경쟁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헌법재판소가 2014년 월경·임신·출산을 근거로 여성의 신체를 ‘군사훈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데 대해서도 남성들은 “그럼 여군은 외계인이냐”고 하고 있다. 직장인 최모(31)씨는 “군 가산점 폐지, 여성 할당제 등도 이해가 안 간다”며 “남자라는 이유로 희생하라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혜택을 주겠다는 건 모순”이라고 했다.

12사단 중대장이 구속된 이날, ‘젊은 남성이라는 게 잘못’ 글이 온라인에 올라왔다. ‘젊은 남성만 군대를 가고 여성 할당제로 취업도 어려운데, 데이트 비용도 전액 부담해야 하고 결혼할 때는 집도 사가야 한다”며 “결혼해서도 섹스리스로 살고, 돈 벌어오는 기계(ATM) 취급받기 십상인데도 불공평하다고 한숨도 쉬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단 4시간 만에 댓글 1000개가 넘게 달렸다.

하지만 2030 여성은 “여전히 대한민국은 지독한 가부장제 사회”라며 “중대장의 성별만 갖고 분노하는 건 일차원적 배설 아니냐”고 반박한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022년 3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국 중 1위다. 평균은 12.1%였다. 한 여성학자는 “중·노년 여성이 아닌 남자 화장실 청소원, 식당 종업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이 임금 격차를 반영한다”고 했다.

직장인 여성 채모(31)씨는 “회사 생활을 해보면 남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특권이자 벼슬”이라며 “여성 직원들은 일상적인 외모 품평, 성폭력에 시달리고 업무 배정과 승진 등에서도 표면적·암묵적 차별의 대상”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등 시민” “거의 인종 차별 수준의 불이익” 같은 말도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의 남녀 갈등은 1999년 군가산점 제도가 헌재 위헌 결정으로 폐지되고, 2000년대 여성 인권이 성장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같은 논란에 일각에선 ‘지겹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남녀 갈등이 합계출산율 0.6명대에 접어든 ‘인구 소멸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며 사회 전반의 각성을 촉구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체의 역량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방치해온 것은 문제”라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질적으로 이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취업 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온라인 익명 여론에 심취하기보단 실제 인간과 자주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남녀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지역·학력·소득·직업 등과 관련한 그릇된 서열 의식, 왜곡된 욕망 체계도 깨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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