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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예쁜데 독한 꼬리명주나비, 애벌레 똥까지 버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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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꼬리명주나비 수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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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 것인지 걱정했는데, 현실이 되고 있다. 7월이나 8월에나 있을법한 푹푹 찌는 열기가 6월 초부터 시작되어 벌써 숨이 턱턱 막힌다. 75년 만에 가장 더운 6월이라고 하더니 때 이른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해가 가장 길게 드리워 더 받을 수 없을 만큼 햇볕이 꽉 찼다. 오늘은 드디어 여름에 이르렀다는 ‘하지(夏至)’. 오늘부터 여름이라 했는데 벌써 폭염이니 시작이 요란하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 난 끝은 없다’라는 속담처럼 물은 무섭다. 무더위는 물과 더위의 합성어다. 더위에 습도까지 더해지면 체감온도가 10℃가량 더 높게 느껴져 불쾌지수도 훨씬 높다. 불볕더위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데, 끈적끈적한 무더위에는 영혼까지 탈탈 털려 견디기 힘들다. 사람들은 뜨거운 열기와 습도 탓에 피하고 싶은 계절이지만, 온종일 먹어대고 번식하는 많은 생물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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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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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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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로 고생할 이때쯤이면 달콤한 향기를 풍기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꽃나무를 만날 수 있다. 자귀나무 꽃은 다른 꽃과는 완전히 다른 분홍색 비단실 수술 뭉치가 꽃 모양을 이루고 있다. 불꽃놀이 폭죽같이 생긴 자귀나무 꽃이 터지면 모든 곤충이 마음껏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벌어진다. 기품 있고 은은한 분홍색 자귀나무 꽃에 금빛의 산호랑나비, 청록색의 산제비나비가 떼 지어 날며 대롱대롱 매달려 꿀을 빠는 모습은 자연이 만들어주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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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나방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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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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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먹는 놈들도 있지만, 잎을 먹는 놈들도 있다. 날개 양쪽에 선명한 태극무늬를 지닌 태극나방 애벌레가 그 주인공이다. 한낱 벌레지만 대한민국 국기인 태극기 문양을 가져 1954년 우표에 출연한 최초의 곤충이 됐다. 태극나방 애벌레 말고도 검은띠밤나방, 앞점무늬짤름나방 애벌레도 자귀나무 잎을 먹이로 삼는다. 곤충뿐 아니라 소가 특히 즐겨 먹어 ‘소쌀나무’로도 부른다. 품위 있는 아름다운 꽃에 사람이 취하고 꽃도 잎도 주변 생물들에게 다 내어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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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잎을 먹는 검은띠밤나방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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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잎을 먹는 앞점무늬짤름나방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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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나 잎 모양이 특이해 조경수로 도입한 외래종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한국 특산종이다. 중부지방 남쪽에 자생하는 추위에 약한 식물로 알려졌지만, 신기하게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추운 곳으로 꼽히는 강원도 산속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옆에서도 잘 자라고 있다. 곤충을 잘 키워보라고 자연이 내려준 양식이 아닐까 싶다. 나무 깎는 연장인 ‘자귀’의 손잡이에 활용되며 자귀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귀에 착 들어오는 이름은 아니다. 고급스러운 꽃에 걸맞게 영어 이름인 비단 나무(Silk tree)로 바꿔 불러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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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명주나비와 필자의 인연도 특별하다. 연구소를 만들기 위해 27년 전 강원 횡성군에 들어왔을 때, 지천으로 널려있던 쥐방울덩굴에 꼬리명주나비 애벌레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나비들은 우리 아이들 어깨 위에 살포시 앉아 반겨주었다. 개체 수가 많아 지역적 대표성도 있었고, 깨끗한 환경을 나타내는 지표종으로도 손색이 없어 ‘프시케’라는 애칭을 붙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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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방울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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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방울덩굴을 먹는 꼬리명주나비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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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명주나비는 예쁜 나비이긴 하지만 사실 독한 놈이다. 애벌레는 쥐방울덩굴을 먹는데 지독하기 짝이 없는 냄새 때문에 ‘까마귀오줌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맹독성 식물로 분류된다. 쥐방울덩굴에는 ‘아리스토로크산’이라는 치명적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곤충이 피하지만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는 먹이로 쥐방울덩굴을 먹고 자란다. 치명적 물질을 먹고 살아서 그런지 다른 곤충에게 기생당하거나 잡혀먹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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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 중인 꼬리명주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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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명주나비 암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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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날개가 스쳐 맺은 좋은 인연이 있다. 10여 년 전, 어느 날 꼬리명주나비를 어떻게 키우는지 알고 싶다며 멀리 경상도에서 정재우 한의사가 연구소까지 찾아왔다. 그는 그때부터 꼬리명주나비가 예뻐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한의학에 접목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쥐방울덩굴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통 의학에서 사용되다가 아리스토로크산의 유독 성분이 확인되면서 생약으로는 사용하지 못해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한약 및 생약의 목록)에서 삭제됐다.



그러나 꼬리명주나비를 키우면서 독한 식물을 먹고도 끄떡없는 애벌레를 보고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꼬리명주나비 분변을 이용한 신약 개발을 계획 중이다. 가래, 천식 해소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미세 먼지 등으로 인한 기관지 질병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시의적절하고 유용한 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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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명주나비 분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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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아침, 저녁으로 애벌레가 싼 똥을 모아 고추에 거름으로 주는 일이 고작이었는데, 신약의 원료로 가치가 충분하다니 멋진 일이다. 꼬리명주나비 애벌레 똥을 최대한 많이 모아서 주기적으로 정재우 한의사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식량이나 사료뿐 아니라 신약 재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니 곤충은 애벌레와 애벌레 똥까지 단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생물자원이다.



나비로 맺어진 좋은 인연이 10년째 이어져 더 좋은 기운으로 발전하고 있다. 나비를 넘어, 인연을 넘어 때때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을 보면 좋은 인연이 맞는 것 같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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