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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르포] 서울 마지막 판자촌 십수년 갈등…구룡마을 평화는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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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계획 통과 이후 '거주사실 확인' 두고 갈등 격화
주민들, 토지 매입권 또는 분양권 요구…일부는 망루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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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입구에 10m 높이 철제 구조물(망루)이 설치돼 있다. 망루에는 '거주사실 확인서를 발급하라'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명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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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조소현 기자·김명주 인턴기자] "주민들의 땀과 피와 눈물로 지켜온 내 집이다." "지금까지 기다렸다. 목숨 걸고 투쟁해 내 집 꿈 이루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10m 높이 철제 구조물(망루)이 보였다. 망루에는 '거주사실 확인서를 발급하라', '서울시는 거주민에게 토지를 우선 매각하라'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주민 20여명이 입구 오른편에 설치된 파란색 천막 아래로 모였다.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드럼통으로 만든 간이 난로에 몸을 녹이기도 했다. 이들의 손에는 '주거용 건축물 거주사실 확인서를 발급하라'는 팻말이 들려 있었다.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이라 불리는 구룡마을 주민들이 망루까지 설치하면서 농성에 나선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이들은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맞서 토지 매입권 또는 분양권을 요구하고 있다.

구룡마을은 지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포동 일대가 개발되며 쫓겨난 철거민들이 이주해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이다. 사유지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이유로 주민들은 전입신고조차 할 수 없었지만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며 지난 2011년부터 전입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면적 26만7466㎡ 구룡마을에는 현재 399세대, 7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거환경은 열악하다. 주택 대다수가 합판과 비닐, 스티로폼 등 가연성 물질로 지어져 화재가 잦다. 주택 사이 공간도 약 60㎝로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라서 한 번 불이 나면 피해 규모가 크다.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소 26차례 불이 났고 지난해 1월에는 4구역에서 난 불이 확산해 주민 500여명이 대피하고 60여채가 불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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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폭설이 내린 지난 27일 구룡마을. /김명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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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 정비 시도는 그동안 꾸준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11년 4월 재임 당시 구룡마을을 개발해 2016년까지 아파트 2793가구를 공급하는 공영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주민이 정착할 수 있는 영구·공공임대 아파트 1250가구도 함께 공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개발방식이 바뀌며 사업이 표류했다. 박 전 시장은 사업비 부담을 이유로 토지주에게 땅으로 보상하는 환지방식을 일부 도입하기로 했는데 강남구가 이를 반대했다. 구는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이 개발이익을 독점할 수 있다며 100% 수용방식을 주장했다. 결국 지난 2014년 8월 구룡마을 개발사업은 무산됐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1월 구룡마을에서 1명이 숨지고 136명의 이재민이 나오는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개발사업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탔고, 시가 구의 수용방식을 받아들이기로 하며 지난 2016년 12월 구룡마을이 다시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지난 2020년 6월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 실시계획이 인가·고시됐다.

시는 지난 5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구룡마을에 3520가구 규모 아파트 대단지를 세우는 도시개발구역 개발계획 변경 및 경관심의안을 가결했다. 시와 사업시행사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올해까지 철거와 이주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주민-토지주 입장 제각각

문제는 시·구와 주민, 토지주 간 입장차가 여전한 것이다. 시와 SH는 주민들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이주대책을 세웠으나 주민들은 '임대료가 나가지 않는 내 집'을 원한다. 구룡마을에 38년째 거주하고 있는 최모(77) 씨는 "임대를 하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벅차다"며 "임대료와 난방비, 수도세, 전기세 등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분양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일부 주민은 토지 매입을 주장하며 농성에 나섰다. 토지를 조성원가에 매입해 자신들이 직접 주택을 짓겠다는 것이다. 유귀범 구룡마을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땅 입찰 시 재벌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비싼 땅이라서 경매에서 이길 수가 없다"며 "도시개발법에 따라서 이주정책 안에 있는 토지를 주민에게 매각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근거로 삼는 국토교통부 훈령인 도시개발업무지침에는 '이주대책에 따라 해당자에게 이주택지 등을 공급하는 경우에는 조성원가에서 생활기본시설의 설치비를 차감한 가격으로 공급한다'고 돼있다. 유 위원장은 "거주사실 확인서를 받아야 토지 우선 매입이 가능하다"며 "실제 거주하고 주민등록도 돼 있고 주민세도 내는데 구청은 확인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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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 주민들은 강남구청이 거주사실 확인서를 발급해줄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지난 25일 주민들이 마을 앞 망루에 올라 시위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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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시와 SH는 "불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상 무허가 건축물 거주자들은 분양권 공급 대상자가 아니므로 분양권을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토지보상법상 무허가 건축물 거주자는 분양권을 받지 못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무허가 건축물이라도 지난 1989년 1월24일 이전에 소유했거나 실거주자로 확인되면 이 건축물을 적법한 건축물로 판단,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데, 구룡마을 주민 대다수는 해당사항이 없다.

시 관계자는 "주민들은 무허가 건축물도 아니고 공공주택 특별법상 간이공작물에 거주하고 있다"며 "간이공작물은 임대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 분양권이 아니라 임대주택 공급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주민이 요구하는 토지 매입권을 놓고도 "시와 SH는 도시개발법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는데 SH가 사업시행사로 돼 수용방식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사업 계획이 이미 수립돼 인가까지 났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거주사실 확인서 발급 때까지 농성" 강경한 주민들

구도 임의로 거주사실 확인서를 발급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 관계자는 "토지보상법 시행규칙상 지난 1989년 1월24일 이전에 거주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며 "주민들이 행정심판을 제기했는데 각하됐다. 일부는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거주사실을) 입증한 주민은 승소했다. 나머지는 패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몇십억짜리 분양권인데 함부로 거주사실 확인서를 발급할 수 없다"며 "서울시도 무허가 건축물을 엄격히 제한한다"라고 덧붙였다.

토지주들은 이제 와서 지역주택조합을 활성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분양전환 임대주택을 요구하고 있다. 이강일 구룡토지주·주민협의회 회장은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와 토지주들의 요구는 다르다"며 "우리는 분양전환 임대주택을 요구한다. 이미 공영개발을 하기로 했기에 임대로 몇 년 살다가 나중에 우선 전환 받는 분양전환 임대주택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토지 매입을 원하는 주민들은 거주사실 확인서를 발급해줄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방침이라 구룡마을을 둘러싼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24일 농성에 나선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 구룡마을 입구에 불법 망루를 설치한 작업팀장 A 씨와 외국인 노동자 5명을 도시개발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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