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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상관 말보다 목숨 지켜라”…박 훈련병 동기 아버지의 애끓는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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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일 오전 강원 인제군 인제읍 남북리 인제체육관에서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대 수료식이 열렸다. 체육관 입구에 최근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숨진 훈련병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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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이 시킨다고 무조건적으로 듣지 말고, 일단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하라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상관의) 말을 들어서 이렇게 아까운 목숨이 사라지느니 차라리 그냥 영창을 갔다 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명령을) 거부해서라도.”



지난달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규정에 어긋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숨진 박아무개 훈련병 동기들의 수료식이 19일 강원도 인제체육관에서 열렸다. 박 훈련병과 함께 입대한 한 동기 훈련병의 아버지 ㄱ씨도 수료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섰다.



ㄱ씨는 이날 제이티비시(JTBC) 유튜브 라이브 ‘뉴스들어가혁’과 인터뷰에서 “아들을 (수료식에서) 만나면 ‘그냥 시키는 것만 하고 나서지 말아라’, ‘절대 건강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비롯해 현재 군 복무를 하는 모든 군 장병들에게 ‘너무 힘들면 영창을 각오하고라도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라’는 취지로 당부했다. 병사를 15일 이내 기간 동안 구금 장소에 감금하는 징계 처분인 영창은 인권 침해 논란이 있어 2020년 없어졌는데 ㄱ씨의 발언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ㄱ씨는 “건강은 너희들이 지켜야지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입대할 때는 ‘대한민국의 군인’이라고 그렇게 부모님들한테 자랑을 하더니 무슨 사고만 터지면 ‘당신 아들’이라고 또 이렇게 외면을 하니, 누가 자식을 믿고 군을 보내겠나”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겨레

19일 오전 강원 인제군 인제읍 남북리 인제체육관에서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대 수료식이 열렸다. 체육관 입구에 최근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숨진 훈련병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수료식 참석자들이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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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씨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날 박 훈련병 동기들의 수료식에는 250송이의 국화꽃이 준비됐다고 한다. ㄱ씨는 “군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님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는데 그곳 회원들께서 자발적으로 250송이의 꽃을 인제체육관 앞에 놓아주고 (박 훈련병 동기들의) 부모님들이 하나씩 들고 입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고 전했다. 250송이의 의미를 묻자 “원래 입소한 훈련병 수가 251명이었는데 그중에 한 명(박 훈련병)이 순직했으니 250송이가 되는 것”이라 답했다.



ㄱ씨는 앞서 박 훈련병의 영결식이 열렸던 지난달 30일 찍혔다는 사진 한 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ㄱ씨는 이날 저녁 ‘지역상생급식’이라는 이름으로 무알코올 맥주, 치킨, 햄버거가 제공됐다고 밝혔다. ㄱ씨는 “아무리 정해진 일정이라지만 하필 영결식 날 나머지 훈련병이 한 손에는 치킨을 들고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사진을 (부대에서) 올렸다”며 “취지는 좋은데 (박 훈련병 사망 뒤) 훈련도 피하면서 왜 굳이 이런 사진을 올려서 잘했다는 걸 보여주고 했는지 아직도 저는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말했다.



한겨레

19일 오전 강원 인제군 인제읍 남북리 인제체육관에서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대 수료식이 열렸다. 체육관 입구에 최근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숨진 훈련병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한 수료식 참석자가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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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훈련병은 지난달 23일 강원 인제군 육군 제12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던 중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다른 훈련병 5명과 함께 완전군장을 하고 선착순 달리기, 팔굽혀펴기, 구보(달리기) 등의 군기훈련을 반복해 받다가 쓰러졌다. 박 훈련병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틀 뒤 숨졌다. 완전군장을 하고 구보나 팔굽혀펴기를 시키면 육군 병영생활규정 위반이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박 훈련병의 사망진단서를 보면 박 훈련병은 다발성장기부전을 동반한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으며 그 원인은 열사병이었다. 고열과 혈압 저하에 시달리는 가운데 장기가 망가지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한편, 강원경찰청 훈련병 사망사건 수사전담팀은 18일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에게 직권남용가혹행위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건 발생 26일 만이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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