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효리네 민박-기안장…스타 PD의 자기복제인가, 세계관 확장인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예능에서 특정 피디가 잘하는 콘셉트를 확장시켜 나가는 흐름이 활발해지고 있다. 제작 환경에 따른 변화라는 의견과 자기 복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은 같은 피디가 만든 ‘데블스 플랜’(위)과 ‘더 지니어스’(아래)의 한 장면. 넷플릭스∙티브이엔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넷플릭스 예능프로그램 ‘데블스 플랜’이 공개됐을 때 일부 시청자들은 갸우뚱했다. 다양한 직업군이 여러 게임에 도전해 최후의 1인을 뽑는 콘셉트가 티브이엔(tvN)에서 시즌4까지 방영한 ‘더 지니어스’(2013~2015년)와 유사해서다. 게임 종류와 출연자 면면만 다를 뿐 최후의 1인이 되려고 심리전 등을 벌이는 양상도 비슷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 중인 예능 ‘대환장 기안장’도 2017~2018년 제이티비시(JTBC)에서 방영한 ‘효리네 민박’이 떠오른다. ‘효리네 민박’에서는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제주에서 민박을 차렸는데, ‘대환장 기안장’에서는 웹툰 작가 기안 84가 울릉도에서 숙박객을 맞는다.

‘데블스 플랜’과 ‘더 지니어스’는 정종연 피디(PD), ‘대환장 기안장’과 ‘효리네 민박’은 정효민 피디가 만들었다. 특정 피디가 비슷한 콘셉트를 확장해 나가는 시도가 예능에서 하나의 흐름이 된 것이다. 정종연 피디는 ‘소사이어티 게임’ ‘대탈출’ 여고추리반’까지 두뇌 추리 예능을 연이어 내놓아 ‘추리 전문 피디’로 불린다. 오는 18일 넷플릭스에서 ‘미스터리 수사단’도 공개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수년 전만 해도 이런 시도를 자기 복제라고 비난했지만, 이제는 애청자들이 ‘○○○ 피디 스타일’이라고 부르며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

‘짝’(아래) 피디가 만든 ‘나는 솔로’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예능 피디들이 외주 제작사를 차려 납품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이런 흐름이 도드라졌다. 에스비에스(SBS) 재직 시절 ‘짝’(2011~2014)을 만든 남규홍 피디는 제작사 촌장엔터테인먼트를 차린 뒤 2020년 ‘스트레인저’에 이어 2021년부터 비연예인 남녀가 상대를 찾는 ‘나는 솔로’ 시리즈만 내보내고 있다. 서혜진 피디는 티브이(TV)조선에서 ‘미스터 트롯’을 성공시킨 뒤 제작사 크레아스튜디오를 차렸고 이후 엠비엔(MBN)에서 ‘불타는 트롯맨’ ‘한일가왕전’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티브이엔 소속으로 ‘환승연애’(2021~2022)를 연출했던 이진주 피디도 지난해 외주 제작사로 옮긴 뒤 비슷한 콘셉트의 ‘연애남매’(JTBC, 14일 종영)를 내놨다.

방송사와 달리 외주사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점도 영향을 미친다. 한 지상파 출신 외주 제작사 피디는 “방송사에 있을 때는 프로그램이 실패하더라도 월급 등 신상에 큰 변화가 없어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데, 오히려 외주에서는 개인 평판과 회사 매출과 직결되기에 새로운 시도가 더 어렵다”며 “플랫폼과 방송사에서도 해당 피디가 가장 잘하는 콘셉트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씨제이이엔엠 산하 제작사인 에그이즈커밍으로 이적한 나영석 피디도 유튜브용으로 준비했던 ‘지락이의 뛰뛰빵빵’이 티브이엔(tvN)에서도 방영되자 출연자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내보내려던 시도를 접었다.

광고 수익 악화 등 제작환경이 나빠지면서 성공 확률을 높여야 하는데다 시즌제가 자리 잡은 영향도 있다. 윤여정의 ‘윤식당’을 이서진의 ‘서진이네’로 배우만 바꿔도 개별 프로그램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한 케이블 방송사 예능 피디는 “셀럽(유명인)에 기대지 않고 콘셉트로 밀고 나가는 예능은 한번 성공하면 출연자를 바꿔가며 계속 선보일 수 있다”며 “‘짝’이 ‘스트레인저’‘나는 솔로’ ‘나는 솔로: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까지 무한 확장하는 것도 콘셉트가 먹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겨레

티브이(TV)조선에서 ‘미스터 트롯’을 만든 피디는 엠비엔(MBN)에서 ‘불타는 트롯맨’(아래)을 선보였다. 티브이조선∙엠비엔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방송사의 지식재산권(IP)을 침해하고 예능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송사 소속일 때 만든 콘셉트를 외주사에서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티브이조선은 2021년 ‘미스터 트롯’과 비슷한 콘셉트인 ‘보이스 트롯’을 방영한 엠비엔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 케이블 방송사 고위 간부는 “예능 유사성을 판단하는 것은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방송사 재직 중에 만든 콘셉트를 상의 없이 방송사 밖에서 활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방송사들은 독특한 프로그램의 경우 저작권을 등록해놓기도 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집계한 영상물 저작권 등록 건수(예능∙드라마 등 영상 부문)는 2012년 505건에서 2023년 2327건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에스비에스는 대화하듯 과거 사건을 얘기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저작권을 2020년께 등록했다. 에스비에스는 또 2017년 대법원에서 ‘짝’의 창작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이에 따라 남규홍 피디는 2020년 ‘스트레인저’를 방영하면서 에스비에스에 사용료를 지불했고, ‘나는 솔로’는 에스비에스플러스(SBS PLUS)와 공동 제작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 문제가 새롭게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방송사 재직 시절 만든 콘셉트를 프리랜서가 되어 활용 중인 한 예능 피디는 “방송국 소속으로 창작을 했다고는 해도 엄연히 내가 생각한 아이템에 대한 권리가 나한테 없다는 건 옛날 방식으로, 어떤 식으로든 담당 피디에게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피지컬: 100’이 문화방송(MBC) 소속 피디가 개인 역량을 발휘해 넷플릭스에서 성공시켰는데 해당 아이피를 온전히 문화방송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상파까지 외주 제작에 뛰어들면서 이 사안에 대한 논의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에스비에스는 지난해 12월 예능 콘텐츠 전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프리즘을 출범했고, 문화방송(MBC)도 모든 콘텐츠를 아우르는 제작 스튜디오 모스트267을 지난 10일 설립했다. 하반기 공개 목표로 ‘피의 게임’ 시즌3을 제작 중이고, 내년 상반기 공개 목표로 백종원과 유명 연예인들이 남극 기지를 찾는 ‘남극의 셰프’도 준비 중이다. 에스비에스 관계자는 “플랫폼 관계없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오직 한겨레에서 볼 수 있는 보석같은 기사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