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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10시간 줄테니 의대증원 재논의하라?…의협의 '무리수'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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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소통과 공감, 그리고 한마음으로' 를 주제로 열린 2024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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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12시 40분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부에 3대 요구안을 냈다. ▶의대 증원안 재논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수정·보완 ▶전공의 관련 행정명령·처분 즉각 소급 취소 및 사법처리 위협 중단 등이다. 의협은 “요구안을 16일 23시까지 답해주시기를 요청한다”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18일 전면 휴진 보류 여부를 17일 전 회원 투표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의협은 정부에게 10시간 20분의 시간을 줬다. 4개월 넘게 이어온 대치를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요구를 받아들이면 예고한 전면휴진을 멈추겠다는 것도 아니다. 전면휴진을 멈추기 위한 총 회원 투표를 벌인다고 했다. 이상한 요구다. 무엇보다 5월 말에 이미 2025학년도 대입 모집정원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를 백지화하는 요구를 수용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왜 이런 무리수를 둘까. 의료계에서는 의협이 완벽한 구심점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으로 이해한다. 한 의대 교수는 “의협과 교수단체가 함께 휴진에 나서기로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부적으로 여러 목소리가 뒤섞여 있다”면서 “전공의 대표가 의협 회장을 공개 저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결속을 위해서 선명한 목소리를 내고 정부에 승부수를 던지는 모습을 보이자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일종의 조급함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협은 지난 13일 의대 교수단체 등이 함께한 연석회의 이후 개최한 브리핑에서 “이 사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부가 의협을 개원의 단체로 치부하고 일부 대학이나 병원 등 다른 단체들과만 (해결책을) 논의했다는 것”이라며 “의료계가 의협을 단일 창구로 만들기로 합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임현택 회장은 뭐 하는 사람이죠? 중심? 뭘 자꾸 본인이 중심이라는 것인지”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단일 창구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의협의 요구안에 정부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불법적인 전면휴진을 전제로 정부에게 정책 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조건 없이 집단휴진을 중단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길 강력히 요청한다”는 입장을 냈다. 정부 관계자는 “불가역적인 2025년 의대 증원을 재검토하라는 요구를 시간을 정해놓고 일방 통보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면서 “이것은 대화를 하지 말자는 말과 동의어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가 요구안을 거부함에 따라 의협은 "계획대로 휴진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요구안을 만들면서 의협은 정부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파업을 이틀 앞두고 선전포고하듯 요구안을 내고, 하루 만에 요구를 수용하라고 닦달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반응은 불 보듯 뻔하다. 전면휴진에 대한 명분을 쌓고 내부결속을 다지려 했다면 너무 얄팍하다. 환자와 국민의 고통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식도암 4기 환자인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대형병원 교수들과 의협의 전면 휴진이 맞물려 중증 질환자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날도 서울대병원 앞에서 휴진철회를 호소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사태 해결의 길이다. 의협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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