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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남과 북, 저급한 심리전 탈피하고 ‘전략적 소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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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1일 경기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 임진강 변 북쪽 초소 주변에 확성기로 추정되는 시설물(동그라미 표시)이 포착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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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와 오물이 풍선에 달려 남북을 오가며 한달 넘게 ‘소동’이 벌어졌다. 풍선이 아니라 포탄이나 미사일이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까딱 잘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나쁜 상상도 그냥 무시하거나 타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적어도 남한 언론에서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일거에 헤드라인에서 밀어낸 이 소동의 줄거리는 전형적인 ‘티격태격’이다.



풍선을 먼저 날린 쪽은 ‘이번에도’ 남한(민간단체)이었다. 5월10일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은 대형 풍선 20개에 대북전단 30만장을 실어 북으로 보냈다. 2주일 뒤 북한 당국은 맞대응을 예고하고 5월28일부터 6월2일까지 두차례에 걸쳐 ‘오물’을 매단 풍선 수백개를 남으로 날렸다. 6월6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다시 풍선 10개를 이용해 대북전단 20만장을 살포했다. 북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6월8일부터 이틀 동안 오물 풍선 수백개를 날렸다.(총 4차례, 1600여개 남한 지역 낙하) 남한 정부는 ‘9·19 군사합의’의 전면 효력정지를 결정하고(6월4일) 비무장지대 대북 확성기 가동을 6년 만에 재개했다.(6월9일) 이에 따라 북한도 대남 확성기를 재설치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13일 현재 풍선도 확성기도 잠잠하다. 아마 남북은 각각 상대의 ‘도발’에 대하여 ‘응징’할 만큼 했고 효과도 보았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통일부)가 6월10일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할 계획이 없음을 재확인했고 같은 날 북한 김여정은 “삐라와 확성기 도발을 병행하면 새로운 대응을 목격할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해놓은 마당에 ‘후속편’을 예단하기 어렵다.





부끄러움 모르는 부끄러움





대북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은 한국전쟁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용된 심리전 ‘무기’였다. 그동안 물리적 무기들이 빠르게 첨단화된 것과 대비하면 안보 문제의 뿌리인 집단적 심리는 얼마나 지체된 상태에 있는지 가늠케 한다. 아니, 지체라는 말보다 퇴행과 타락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이번 소동에서 새로이 등장한 ‘오물’이라는 단어는 북한이 보낸 풍선뿐 아니라 남에서 북으로 보낸 물건들에도 해당된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온갖 추잡한 ‘풍문’과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조잡한 합성 사진이 인쇄된 삐라, 북한이 법까지 만들어 배격하는 케이(K)팝 유에스비(USB), 거지에게 뿌려 주는 듯한 1달러짜리 지폐들은 북한 입장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오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은 6월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하여 “정상적인 나라라면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비열한 방식의 도발”이라고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할 수 있는 말인가. 정말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닐까.



부끄러움이 두배가 되는 것은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남한의 민간단체들이 미국으로부터 돈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비정부단체이기는 하지만 미국 정부(국무부·중앙정보국)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 ‘전미민주주의기금’(NED: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1983년 설립)은 ‘자유북한운동연합’에 뒷돈을 대주고 있다. 이것은 전미민주주의기금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된 내용이다. 그렇게 민주주의의 확산과 표현의 자유라는 얼핏 ‘흠잡을 데 없는’ 가치를 추구하는 한-미 동맹이 일부 탈북자들의 생계와 연계되어 때때로 온 나라를 안보 불안에 빠뜨리는 어이없고 창피하고 슬프고 위험한 그림이 그려진다.



차제에 한국의 심리전 전략도 ‘진도’ 좀 나갈 필요가 있다. 물리적 전쟁 양상이 아무리 변해도 심리전 없는 전쟁은 없다. 인간 자체가 에너지와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라 할 수 있기에 정보시대에 들어 심리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심리전을 정보전이라는 더 큰 범주 안에서 보면 상대방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관, 신념체계, 정서, 사고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활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결과(상대의 심리적 위축, 사기 저하, 탈영이나 귀순 등)를 얻으려 하는 조직적인 활동이다. 정보전의 대상은 군인뿐 아니라 지도자, 정부 조직, 기업, 일반 대중 등 사실상 ‘모든’ 사람이고 적뿐 아니라 아군에게도 실시되며 전·평시의 구분도 없다. 현대 심리전은 그 목표는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지만 정보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에 따라 수단 측면에서 다양화·고도화되고 있다.



미군은 심리전 분야에서도 단연 선두에 있다. 각 군은 물론이고 합동참모본부와 국방부 차원에서 심리작전(PsyOp)에 관한 구조화된 문서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해외 군사작전에서도 지역사령부급에서 별도의 기능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쟁부터 심리전의 다른 명칭으로 ‘가슴과 마음’(hearts and minds)이라는 드물게 시적인 용어를 심리작전과 같은 뜻으로 사용했다. 또한 전략적 소통(Strategic Communication)이라는 용어를 홍보나 공보의 뜻으로 사용했다. 대변인도 전략소통관이 되었다. 이 멋진 말들은 심리전의 방법과 목적을 가장 적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불행한 것은 그 많은 심리작전 야전교범을 읽었어도 미군은 아프간에서 민중의 가슴과 마음을 얻지 못했고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략적 소통에도 결국 실패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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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약점 파고드는 공세 말고…





한겨레

북한 황해도 개풍군 산에 확성기로 보이는 시설물이 있다.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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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간에는 전쟁 자체를 종결해야 하므로 심리전도 없는 게 옳다. 그러나 ‘중간 단계’에서 어쩔 수 없이 심리전을 벌여야 한다면 구태에서 벗어나 좀 더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심리전을 국가 차원에서 물리적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단 살포 따위로는 북한 당국과 주민의 거부감만 강화시킬 뿐 심리전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인간은 심리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나의 가슴과 마음을 얻으려 하는 상대의 심리를 본능적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이 대북 심리전에 활용할 수 있는 ‘절대무기’는 민주주의와 상대적인 경제적 풍요다. 그러나 이 두가지도 냉정히 보면 너무도 불완전하다. 언제든지 중우정치로 돌아갈 수 있는 민주주의와 경제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또 한가지 부정할 수 없는 남한의 약점은 구조화된 대미 의존성이다. 한편 북한의 강점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전사회적 단결력과 자주성이다. 그러나 이 역시 보편적인 민주적 가치와 외교적 고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만성화된 민생경제의 부진이 가장 현실적인 약점으로 더해진다. 남북한의 심리전은 늘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공세로 시작되었다.



대북 심리전은 상호 비방을 교환하면서 함께 지는 전쟁이 아니라 상호 존중하는 전략적 소통을 통해 함께 이기는 게임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에도 정치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어도, 인터넷이 막혀 있어도, 대북 소통의 편리한 점은 한 사람(김정은)과 소통하면 모두와 소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오래된 지혜를 가져다 쓰자. 북한 비난을 자제하고 우리의 강점을 드러내는 정책을 일관되게 발표하자. 북한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통일부·외교부 등의 대변인들은 전략소통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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