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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우연과 기발한 과학실험… 인류를 진보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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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토스테네스 기하학 원리 착안

그림자 각도 측정 지구 둘레 계산

푸코는 진자 실험으로 자전 증명

중력파 포착 ‘라이고’ 검출 시스템

몰리 등이 사용한 실험기법 유사

아름다운 실험/ 필립 볼/ 고은주 옮김/ 소소의책/ 3만8000원

고대에 대다수 학자는 지구가 공 모양에 가깝다고 봤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크기를 처음 기록으로 남긴다. 그는 지구 둘레가 약 4만8000㎞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적도 둘레 4만72㎞와 유사하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책 ‘세계의 측정’은 사본이 남아있지 않아, 지구 둘레 측정법은 다른 문헌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북회귀선을 지나는 이집트 시에네(현재 아스완)에서 정북향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에 하짓날 수직으로 막대기를 세우고 그림자의 길이를 쟀다. 두 도시 사이 거리도 측정했다. 막대기의 그림자 각도는 지구 중심에서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에 이르는 선 사이의 각도와 같다. 이 각도를 알면 지구 둘레의 몇 분의 1이 두 도시 사이의 거리에 해당하는지 계산할 수 있다고 그는 추정했다.

세계일보

프랑스 화학자 아투안 라부아지에의 호흡 실험에서 한 사람이 저울 세트에서 몸무게를 재고 또 한 사람은 유리 용기에 머리를 넣고 있다. 라부아지에의 부인이 그렸다. 영국 웰컴컬렉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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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토스테네스의 실험에서 기발한 것은 기하학 원리로 땅을 재듯 하늘을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 보편적 과학법칙이 우주 전체에 적용된다는 가정은 오늘날 과학의 핵심이지만, 고대 그리스인은 측량과 건축을 하며 땅을 측정하듯 천체에 기하학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신간 ‘아름다운 실험’은 에라토스테네스의 ‘막대기’에서 시작해 2012년 힉스 입자의 발견, 2010년 최초의 합성 유기체 제작에 이르기까지 수천년간 주요 과학실험 60가지를 정리했다. 저자는 “실험과학의 역사란 실험적 방법론의 순차적인 발전에 맞춰 과학지식이 꾸준히 축적된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우연한 사건, 흥미롭고 기발한 사건을 모아놓은 것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세계일보

필립 볼/ 고은주 옮김/ 소소의책/ 3만8000원


책은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빛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유기체는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6가지 질문 아래 각각의 실험을 정리했다.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면,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 둘레를 측정한 후 1851년 프랑스 파리로 넘어간다. 당시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는 유명한 진자 실험으로 지구의 자전을 직접 증명했다.

1840년대 말 푸코는 루이 다게르가 발명한 사진기로 밤하늘을 찍기 위해 진자로 구동되는 시계 장치를 만들었다. 직접 사용해보니 장치가 저절로 느리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앞서 1837년 프랑스 과학자 시메옹 드니 푸아송은 지구의 자전이 진자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설명했지만 이 효과가 너무 작아서 감지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진자로 자전을 확인하려면 방해 요소가 있다. 추는 공기 저항을 받고, 매달린 줄도 기류와 마찰에 영향을 받는다.

푸코는 1851년 집 지하실에서 2m짜리 진자로 직접 실험했고, 지구의 자전에 따른 진자 진동면의 회전을 처음 목격했다. 그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모두 생각에 잠기고 몇 초 동안 숨을 죽였다. 우주에서 우리가 쉬지 않고 이동하고 있다는 압도적이고 강렬한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고 적었다.

실험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패하는 일이 더 많다. 1880년대 앨버트 마이컬슨과 에드워드 몰리는 우주 공간을 채운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서로 직각을 이루며 두 방향으로 이동하는 빛의 속도를 측정하기로 했다. 에테르가 있다면 한쪽의 광속에 미세한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했다. 당연히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를 두고 네덜란드 물리학자 헨드릭 로렌츠는 광파의 전자기장이 이동하면서 변형돼 빛의 파장이 수축하고 이에 따라 에테르를 통과하는 빛의 속도 변화가 보정된다고 주장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05년 ‘로렌츠 수축이 광파를 변화시키지 않으며, 사실은 공간과 시간 자체의 변형이라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의 바탕이 되는 생각이다. 에테르를 증명하려는 실험은 실패했지만, 이 같은 시도가 다른 과학적 질문들로 이어졌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바꿨다.

아인슈타인이 1916년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도 실험 결과가 뒷받침됐기에 받아들여졌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이 육중한 물체에 의해 변형된다고 결론 내렸다. 다른 과학자들은 못마땅해했다. 영국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 고생 끝에 이를 뒷받침하는 관측 자료를 내놓은 이후에야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반감이 점점 자취를 감췄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중력파는 2015년 라이고(LIGO)라는 거대 검출 시스템을 통해 포착됐다. 라이고의 기본 원리는 1887년 마이컬슨과 몰리가 에테르의 증거를 찾으려 사용한 실험기법과 유사했다. 라이고는 수천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참여해 거대하고 값비싼 장비로 극한을 탐색하는 새로운 실험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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