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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집단 휴진 불참’ 동료 의사들 막말로 비판한 의협 회장 정상인가 [논설실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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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 아동· 뇌전증 지원 병원 등

본분 다하는 동료들에 오명 씌워

대학병원 간호사들조차 등 돌려

‘히포크라테스의 통곡’ 일독하길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차원의 집단 휴진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전국 거점 뇌전증 지원병원 협의체가 14일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분만 병·의원협회와 대한아동병원협회에 이어 세 번째로 나온 의사 단체의 불참 선언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 곁을 지키며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겠다는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전국 14만 의사의 대표자라는 의협 회장은 이런 책임감 강한 동료들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이나 쏟아내고 있으니 참으로 볼썽사납다.

세계일보

투쟁선포하는 임현택 의협 회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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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지원병원 협의체는 주요 대학병원의 뇌전증 전문 교수들로 구성된 단체다. 이들은 성명에서 “뇌전증은 치료 중단 시 신체 손상과 사망 위험이 수십 배 높아지는 뇌 질환”이라며 “아픈 환자 먼저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앞서 분만 병·의원협회는 “산모와의 약속을 깰 수 없다”, 아동병원협회는 “아픈 아이들을 생각하면 병원 문을 닫을 수 없다”며 나란히 휴진 불가를 공언했다. ‘나는 환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며, 어떠한 해악이나 부패스러운 행위도 멀리할 것’이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의사들이 있기에 전공의 이탈 등 혼란의 와중에 우리 의료 체계가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의협 지도부의 생각은 전혀 다른 듯하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진료를 계속하겠다는 아동병원협회를 겨냥해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세계 어디에도 없는 ‘폐렴끼’란 병을 만든 사람들”, “멀쩡한 애를 입원시키면 인센티브를 준다” 등 표현을 써가며 맹비난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임 회장이 뭐라고 하든 국민 대다수는 ‘아이들은 작은 병도 제때 놓치면 위험하니 진료를 멈출 수 없다’는 아동병원협회 측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지지를 보낼 것이다.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 여자 제정신이냐”라는 글을 올려 물의를 빚었는데 일주일도 안 돼 또다시 막말을 하니 말문이 막힌다. 이러니 의사인지, 선동가인지 헷갈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 아닌가.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판사의 사진과 인신공격성 게시글을 SNS에 올려 사법부를 능멸했다며 임 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그가 경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세계일보

분당서울대병원에 '의사제국 총독부의 불법 파업 결의 규탄한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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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 간호사들은 “휴진을 하려면 이미 예약된 진료 일정을 교수들이 직접 바꾸라”며 진료 일정 변경 업무를 거부하고 나섰다. 이 또한 아무런 명분도 없는 집단 휴진에 동참할 뜻을 밝힌 의대 교수들이 자초한 일이다.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속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교수들은 전공의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의협은 의사 증원 전면 재검토라는 요구로 휴진을 예고하고 있지만, 이는 합리적 판단이 아니며 그 목적지는 파국일 뿐”이라고 했다. 백번 옳은 지적이다. 임 회장 등 의협 지도부는 얼마 전 분당서울대병원 노동조합에 나붙은 ‘히포크라테스의 통곡’이란 벽보를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휴진으로 고통받는 이는 예약된 환자와 동료뿐”이란 지적에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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