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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차상근의 관망과 훈수] 脫'국장', 누구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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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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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근의 관망과 훈수] 脫'국장', 누구 탓일까

"1991년에 취직하면서 개미(개인투자자)가 됐는데 작년에 30년 넘은 계좌를 정리하면서 따져보니 코스피지수는 그동안 3배 못 올랐는데 S&P500 지수는 15배 올랐더만. 좀 더 일찍 미국주식으로 갈아타지 않은게 크게 후회될 뿐이야"

32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백수생활에 돌입한 지인을 만나 들은 푸념이다. 요즘 현역 은퇴가 한창인 1960년대생, 베이비부머세대들은 오랜시간 직장에 충실하며 자식교육에 열정을 쏟아붓고 차곡차곡 재산을 모으며 살아온 소시민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직장생활 초기에는 주로 저축을 통해 재산을 불리거나 집장만에만 몰두했지 주식투자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사태와 닷컴버블 시기를 지나면서 주식투자에도 눈을 돌렸다. 이들이 개미투자자의 원조쯤이다. 적어도 내 주변의 대다수는 현재 '직장'은 없더라도 '개투'를 평생직업으로 삼아 열심히 '국장'(국내주식시장)과 '미장'(미국시장)을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들은 20년 넘게 희노애락을 함께 한 '국장'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자신이 줄곧 '보이지 않는 손'에 끌려다니며 '호구'노릇을 했다는 피해의식을 키우고 있다. 특히 매달 '따박따박' 받아온 급여가 끊기고부터는 이전에 알토란같은 '내 재산'을 털어간 무언가에 무척 분개해 한다. 그럴만 하다.

개인의 해외직접투자가 허용된 2006년말 코스피지수는 1434선이었는데 S&P500은 1418, 나스닥종합지수는 2415였다. 지금 코스피는 2700선으로 88% 수익에 그쳤는데 S&P500, 나스닥은 그동안 사상최고치를 끝없이 경신하며 각각 5447, 1만7725선에 와있다. 300%, 600%에 이르는 경이로운 수익률이다.

'국장'이 '허당'이란걸 깨달은 많은 개미들이 '미장'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증권계좌를 유지하면서 적지 않은 자산을 탈탈 털려본 은퇴개미들은 국장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올들어 이달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약 11조5000억원 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 기간 미국주식은 8조4000억어치(60억7000만달러)를 순매수했다. 그 결과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주식 금액은 사상최대치를 경신하며 821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서학개미들의 '미장'투자 열풍은 코로나19사태 초기인 2020년부터이다. 당시 보유금액은 91억달러에 불과했는데 4년여만에 거의 9배수준으로 불었다.

'미장'열풍은 일단 극명한 수익률차이에서 시작된다. 올들어 S&P500지수는 13%올랐는데 코스피지수는 2.5% 상승에 그친다. 펀드 수익률은 17% 대 3%이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개미들은 최근 정부가 추진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책, 기업밸류업프로그램도 믿지 않는 분위기이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필수적인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방안이 기대에 크게 못미친다. 무엇보다 이사 역할 정립이나 일반주주에 대한 책임 강화, 뿌리깊은 재벌경영 구조를 혁파하는 방안 등을 내놓지 않는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요원하다는게 대체적 여론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국장'투자 축소계획도 개미들의 '미장'행에 불을 지르고 있다.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오는 2029년까지 중기투자계획(자산배분)을 짜면서 국내채권 비중을 현재 29.2%에서 20.5% 낮추면서 국내주식도 14.2%에서 13%로 줄이기로 했다. 내년에만 0.5%p 축소한다. 기금규모가 1100조원인데 현재 기준으로 11조원 감축하며 내년에만 5500억원 어치 주식을 내다팔아야 한다. 국민연금은 기대수익률이 낮은 자산을 감축하는 차원에서 유동성이 떨어질 수 있는 국내자산을 우선 감축하고 해외투자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내년에 해외주식은 33.0%에서 35.9%로 2.9%p늘린다.

'국장'의 최대 큰손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투자를 줄이고 미국주식 등 해외주식을 두배로 늘린다는데 국장이 견뎌낼 재간이 있을까. 여기에 후진적 자본시장 세제도 '개투'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줄기차게 요구해온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3중과세를 당하며 국장을 지킬 애국심은 사라질 것 같다.

'국장' 생긴 내내 어리숙하게 당하기만 했던 개투들이 이번에는 눈치를 챈 것일까. 밸류업프로그램이 '개미무덤' 유인책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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