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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태평로] 김호중이 다시 살아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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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군 미군, 해방군 소련

친일 세력 척결 주장하고

“진짜 판결은 국민이 내린다”

정치인 변신해 떼를 써보라

조선일보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구속 송치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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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운전 및 도주 치상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된 가수 김호중이 다시 우뚝 설 방법이 있다. 정치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우선 정의로운 역사 의식을 천명한다.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은 해방군으로 한반도에 진주했다고 주창한다. “친일, 종일, 숭일, 부일하는 모리배·매국노들이 호의호식하고 고위직에 올라 떵떵거리고 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목소리 높여 외친다.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에서 일본을 제친 사실 따위는 잊어버리는 게 좋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도 않았다. 고작 음주운전·도주 혐의에 구속 영장이 바로 떨어진 것은 한갓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구속 기간은 어제(9일) 열흘 더 연장됐다. 이제 ‘그냥 정치인’ 말고 ‘정의로운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날개 달면 판사도 함부로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 같은 사람인데 김호중은 처벌받으면 안 되고, 힘 없는 사회 초년생 막내 매니저는 처벌받아도 되느냐” 따위 훈계는 늘어놓지 못한다.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피의자의 방어권이 배척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단서 달아 방면할 것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간다. 15만 팬덤이 뒤를 받치고 있다. 물티슈로 먼지 앉은 승용차를 눈물겹게 닦아주고, 문자 폭탄 양념 날리며 한결같이 지지하는 다른 유력 정치인 팬덤을 참고한다. 오직 개혁의 편에 서서 깨어있는 시민만 믿고 검찰 독재의 가혹한 탄압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가열차게 외친다. 계속 되풀이해 거듭 주장하면 일반 국민도 “진짜 그런가?” 혼돈에 빠질 것이다.

설령 1심에서 유죄를 받더라도 흔들릴 필요 없다. 정의로운 정치인이 되면 향후 재판은 한없이 지연되고 소환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보궐 선거 또는 다음 총선까지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디고 버텨 정의로운 정치인이 되면 달콤한 보상이 따라온다. 역시 정의로운 동료 의원들이 방탄에 나설 것이다. 그래도 재판에서 최종 유죄가 나오면? 걱정 없다.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고, 비난을 받은 것도 이해한다”고 쿨하게 인정하고 옥중에서 스쾃과 팔굽혀펴기를 하며 검찰 정권 무너뜨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한다. 정의로운 정치인에게 기회는 반드시 다시 열린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다수는 굳게 단결한 소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가 신간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 썼다. “조직화된 이익단체들은 정책과 입법 과정에서 다수 여론과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종종 강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중략) 판사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여론과 동떨어진 결론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267쪽)

대마(大馬)는 결코 죽지 않는다. 트럼프 사례를 배울 필요가 있다. 혐의 모두 유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부패한 판사에 의해 조작된 재판” “나는 무죄다. 끝까지 싸울 것” “진짜 판결은 국민에 의해 내려질 것”이라고 선언한다. 지지를 철회하는 팬은 7% 남짓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급선무는 정의로운 정치인을 우선 선언하는 일이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된다.

※추신: 혹여 오해할지도 모를 독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위 글은 반어·역설·풍자를 담아 썼습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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