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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무서워"… '고물가'에 관공서 식당 직장인 몰린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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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플레이션’에 시민 발길 쇄도

1분기 외식물가 3.8%↑… 부담 가중 속

구청·도서관 등 구내식당 큰 인기

식권 5000원… 푸짐하고 값도 저렴

“맛있는 음식 나오면 문밖까지 줄”

경찰서 식당 등은 식자재값 부담

외부인 관내 출입 통제 움직임도

지난달 29일 오후 12시30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별관 구내식당에는 각기 다른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한끼 식권 가격이 5000원인 조달청 구내식당을 이용하기 위해 인근 직장인들이 이곳을 찾은 것이다. 조달청 직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덕에 직장인뿐만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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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별관 구내식당에서 나온 점심 식사. 홈페이지 등에서 누구나 이곳 점심 식단을 확인할 수 있다. 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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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구내식당의 메뉴는 제육볶음과 햄야채볶음, 나물류 2가지, 김칫국이었다. 제육볶음과 밥은 원하는 만큼 담을 수 있는데, 몇몇 직장인들은 식판 가득 푸짐하게 받았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최모(68·여)씨는 “요즘 점심 한끼 값이 만만치 않아서 아껴볼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다”며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온다”고 말했다.

조달청과 인접한 국립중앙도서관 구내식당도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구내식당 중 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식권 5000원에 찜닭과 매운버섯국, 소시지떡볶음, 나물, 잡곡밥을 제공했다. 고속터미널역 인근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안상수(36)씨는 “회사와 가까운 데다 가격도 저렴해서 동료들과 자주 찾는다”며 “그날그날의 메뉴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데, 맛있는 음식이 나올 땐 줄이 문밖으로 이어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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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식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주머니가 가벼워진 시민들이 한끼 식사를 위해 경찰서나 구청 등 관공서 구내식당을 찾는 발걸음이 늘고 있다. 한끼 가격이 저렴하고 맛까지 좋은 구내식당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일부 구내식당에선 식자재값 부담으로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시민들은 구내식당을 찾는 가장 큰 이유로 ‘가격’을 꼽았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생선·채소·과일 등 55개 품목 물가를 반영하는 신선식품지수는 지난달 기준 전년 동월 대비 17.3% 오르며 8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1∼4월) 가구당 가처분소득은 월평균 404만6000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4%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외식 물가는 3.8% 올라 가처분소득 증가율의 2.8배를 기록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종로구청 구내식당을 이용한다는 회사원 박모(27)씨는 “식비를 아끼려 점심도시락을 준비해 봤지만 이틀치 장을 보는 데 2만원 넘게 들었다”며 “1인가구는 식재료를 구매해도 남아서 버리는 경우가 많아 밖에서 먹는 것이 차라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종로구청 외에도 서울 도봉·성북·중랑·양천·영등포구청 구내식당이 외부인에게 개방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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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오후 1시쯤 국립중앙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직장인과 도서관 이용객이 점심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구내식당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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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구내식당은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경찰서가 대표적이다.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 가운데 구내식당을 개방한 곳은 마포·성동·중랑경찰서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동대문경찰서는 올해부터, 강남·방배·서대문·남대문경찰서 등은 코로나19를 전후로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식품위생법상 집단급식소는 영리 목적으로 외부인에게 개방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인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구내식당 이용 제한은 몇년째 동결된 식권 가격으로 운영 부담이 커진 이유도 있다. 경찰서 구내식당은 대부분 만성적인 적자 운영을 하고 있는 데다 경찰청·지자체의 예산 지원도 없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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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각 젊음의거리 음식점 간판을 바라보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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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국가공무직지부 경찰청지회는 “경찰서 구내식당은 최근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운영이 크게 어려워졌고, 결국 식단의 질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북경찰서는 아침 식단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와 경찰서 차원에서 사과하기도 했다.

구내식당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나는 것에 인근 상인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는 2019년 “집단급식소에 해당하는 경찰서 구내식당이 불특정 다수에게 식권을 판매해선 안 된다”며 민원을 제기한 바 있다. 식약처는 소수의 민원인 및 방문객 등이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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