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소비재보다 중간재 지원이 더 효과"
"가격 오르면 할당관세? 단기책으로만 써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을 찾아 야채 가게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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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2년 연속 역대 최대 규모로 실시해 온 할당관세로 인해, 세수 감소액이 2년 연속 1조 원을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할당관세는 수입 시 붙는 관세를 한시적으로 낮추거나 면제하는 제도를 뜻한다. 윤석열 정부는 물가 관리를 위해 할당관세를 역대 최대 규모로 활용해 왔는데, 취지와 효과에 대한 고려 없이 제도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례적으로 100개 넘는 품목에 할당관세
4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2023년도 할당관세 부과실적 및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할당관세는 총 117개 품목에 실시돼 1조753억 원의 세수가 줄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관세를 0%에 가깝게 낮추면서 걷혀야 할 세금이 1조 원 넘게 걷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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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들어 할당관세 품목과 세수 지원 금액은 크게 뛰었다. 정부가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긴급 할당관세를 자주 실시한 영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장바구니 물가는 몇백억 원 정도만 투입해 할인 지원하고, 수입품 할당관세를 잘 운영하면 잡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10년간 100개를 넘은 적이 없던 할당관세 적용 품목은 2022년 처음으로 119개를 돌파했고, 2023년도 117개로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올해는 77개 품목에 대해 9,670억 원 수준으로 할당관세를 실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과일 등 영향으로 물가 상승률이 3%대를 웃돌자 과일류 28종, 무·배추 등 농산물 4종, 오렌지·커피농축액 등 식품 원료 19종 등 긴급 할당관세 품목을 대폭 늘렸다.
최종 소비재에 미치는 효과 글쎄...
그래픽=김대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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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할당관세 세수 감소액이 2022년보다 소폭 줄었고, 물가 안정 효과가 일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할당관세로 인해 2022년엔 1조9,694억 원이 덜 걷혔는데, 2023년은 절반가량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2022년 대비 2023년에 액화천연가스(LNG) 0% 할당관세 적용 기간이 줄었고, 애초에 LNG 수입금액이 하락해 비율로 정해지는 관세 또한 감소한 영향이 크다.
할당관세로 인해 물가 안정 효과가 소폭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지만, 작년 세수 감소액을 감안하면 소비자물가지수 변동 효과는 감자전분 마이너스(-)0.1%, 닭고기 -0.18%, 설탕 -0.47% 등이라 서민이 체감할 만한 영향은 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앞서 기획재정부에 할당관세 실적을 보고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종 소비재에 대한 할당관세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이미 이런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일시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과일과 농축수산물에 대한 할당관세를 늘린 것이다.
KDI가 기획재정부에 보고한 '2022년도 할당관세 지원 실적 및 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KDI는 "가격 안정 효과와 거시경제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최종소비재보다 생산자에 대한 중간재 수입 지원이 더 효과적"이라며 "할당관세 지원을 확대한다면 물가 효과와 네트워크 효과가 모두 높은 부문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좋다"고 제언했다. 네트워크 효과가 큰 부문으로 과일이나 농축수산물이 아닌, 사료에 쓰이는 옥수수 등 맥류 및 잡곡, LNG, 원유, 합급철 등 후방산업에 대한 지원 품목을 예시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할당관세를 남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단기책'으로 일부 품목에 한정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과 교수는 "가격이 오른 여러 품목에 대한 부담을 낮추기 위해, 무분별하게 할당관세를 실시하는 것은 경제 주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며 "상대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정부 주도로 관세를 또 내린다'는 신호를 줄 텐데, 통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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