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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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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 신상 인터넷서 공개돼…사적 제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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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2차 피해나 공권력 약화” 우려

세계일보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한공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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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밀양에서 발생한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최근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통 속에서 사는 반면 가해자 중 일부는 가정을 꾸리는 등 행복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공분은 한층 높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인터넷 등에는 사건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돼 사적 제재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선 여론 조사에서 “국가 혹은 법이 충분한 처벌을 내리지 못한다면 개인(집단)의 형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컸는데, 다만 가해자의 주변이 원치 않는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4년 1월 발생했다.

당시 울산의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A양은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해 집을 나갔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알게 된 고교생 박모 군을 만나러 밀양에 갔다가 박군의 선·후배 고교생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했다.

박군은 A양을 유인해 쇠파이프로 내리쳐 기절시킨 후 12명과 함께 성폭행했다. 또 그 모습을 캠코더와 휴대전화로 촬영해 협박에 이용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저질러진 범행에 가담한 밀양 고교생은 무려 44명에 이른다.

A양은 수면제 20알을 먹었으나 이틀 만에 깨어났고, 울산의 한 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A양의 어머니는 2004년 11월 25일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딸의 신분을 보호해달라’는 A양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에도 언론에 사건 경위와 피해자의 신원을 그대로 노출했다. 대면조사에서도 여경 대신 남성 경찰관이 심문을 맡았고, A양은 “네가 먼저 꼬리 친 것 아니냐”, “네가 밀양 물을 다 흐려놓았다” 등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사건 이후 신상이 노출되며 서울로 전학,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성폭행으로 인한 여러 합병증에 시달렸다.

결국 A양은 폐쇄병동에 입원됐고 그 와중에 가족들이 합의를 강권했다. A양은 가해자에게 합의서와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를 써줘야만 했다.

그 결과 집단성폭행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된 가해 학생 44명 중 단 한 명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고, 이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한 일상이 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당시 검찰은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10명만 기소했다. 나머지 34명 중 20명은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으로 전과가 기록되지 않는 소년부에 송치했고, 13명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소권이 없다며 풀어줬다. 결국 울산지법이 2005년 4월 기소된 10명에 대해 부산지법 가정지원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전 국민적인 공분은 이같은 결과에서 나온다. 분노한 국민 일부는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늦었지만 피해자가 입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또 일부는 가해자 신원을 인터넷상에 공개해 비판을 이어오고 있다. 실제 4일 세계일보가 각종 커뮤니티에서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언론을 통해 전해진 가해자 중 일부의 사진과 직업, 가족관계 등이 모자이크 등의 처리 없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국가 또는 법을 대신해 사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한 한 변호사는 “국민적 공분은 충분히 공감된다”면서도 “안타깝지만 종결된 사건이다. 자칫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 소송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사적 제재는 앞서 부산에서 발생한 돌려차기 사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사적 제재에 동의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지난해 6월 리서치 전문 기업 리얼리서치코리아가 성인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0.4%가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된 것에 대해 ‘공개되면 다른 사람들이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으므로 ‘사적 제재’로서의 신상 공개를 지지한다’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재 적용되고 있는 사적제재에 대해 전체 응답자 중 37.6%가 ‘국가 혹은 법이 충분한 처벌을 내리지 못한다면 개인(집단)의 형벌이 필요하다’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인(집단)이 형벌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가 33.1%, ‘국가와 법의 제재와는 별도로 개인(집단)의 형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가 12.5%, ‘상황에 따라 입장이 변할 것 같다(잘 모르겠다)’가 16.9%로 뒤를 이었다. (이 설문조사의 허용오차는 ±1.4%p다)

전문가들은 사적 제재 확산의 배경으로 사법 체계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꼽는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적 제재는 2차 피해나 공권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절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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