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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닭도리탕’이 일본말이라고? 칼로 도리쳤다는 한국 음식명[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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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에 관심이 높다. 이러한 현상에 비례하여 가짜 정보가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분야가 음식 분야이기도 하다. 지식인들이 하는 이야기라면 검증 없이 진실인 것처럼 무조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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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그 대표적인 것이 ‘닭도리탕’이 일본말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일본어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화투판에서 그럴듯하게 꾸며낸 내용을 가지고 닭도리탕이 일본말이라고 한다. ‘고도리(ことり)’에서 ‘도리’가 ‘새’라고 하는 것을 듣고 그러는 것인데, 여기에 일본어를 좀 한다는 사람들이 ‘도리’가 ‘닭’이라는 뜻도 있다고 하면서 닭도리탕이 ‘닭닭탕’의 일본어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또 지식인인 언어학자가 가세하여 ‘닭닭탕’이라고 하면 닭이 두 번 들어가니 일본어 ‘도리’를 집어넣어 ‘닭도리탕’이라고 했다고 그럴듯하게 합리화하였다. 몇몇 음식학자까지 가세하여 닭도리탕은 일본어이니까 닭도리탕 대신 ‘닭볶음탕’이라고 하자고 한 것이다.

전통적인 닭도리탕에는 볶음 과정이 없다. 한데 방송에서는 우리 시골 할머니들이 ‘닭도리탕’이라고 하면 굳이 ‘닭볶음탕’이라고 고쳐서 자막을 내며 마치 할머니들의 말이 틀린 말인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화투판에서 닭도리탕이 일본말이라는 주장이 돌아다닐 때, 적어도 지식인이라면 닭도리탕이란 말이 어째서 일본에서 왔는지 따져 보았어야 했다. 닭도리탕은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만들어 먹어 오면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음식 이름이 일본에서 왔다면 과연 일본에 비슷한 음식이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일본에는 고춧가루로 맛을 내는 닭도리탕과 같은 음식이 없다. 그러므로 닭도리탕이 일본말에서 왔다는 주장엔 개연성이 거의 없다. 또한 우리 음식 이름에 ‘닭닭탕’이라는 말과 같이 재료를 두 번 넣어 부르는 것이 있는가? 언어 구조상 그렇게 부를 이유도 없고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논리적으로 하나도 맞는 게 없다.

백번 양보하여 우리 시골 할머니들이 ‘닭닭탕’이라고 불렀다고 치자. 과연 누가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며 굳이 일본말로 바꿔 부르자고 했겠는가? 닭도리탕을 즐겨 먹었던 할머니들은 중국어도, 일본어도, 영어도, 심지어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분들이 썼던 말이 우리말이 아니고 어느 나라 말인가?

참고로 칼로 자르는 것은 ‘도리다’이고 가위로 자르는 것은 ‘오리다’이다. 그래서 가위로 오려서 가져오면 ‘오려내다’이고, 쳐내면 (거의 쓰이지 않지만) ‘오리치다’이다. 마찬가지로 칼로 도려서 가져오면 ‘도려내다’이고, 쳐내면 ‘도리치다’이다. 마치 공을 글러브로 받으면 ‘받아내다’이고 방망이로 쳐내면 ‘받아치다’라 하는 것과 같다.

지식인이나 학자들의 말이라면 거짓이라도 맹목적으로 따르는 분위기가 개선되어야 우리 음식이 발전할 수 있다. 언어학적으로 우리나라는 한결같이 재료를 어떻게 하여 만든 음식(탕, 국, 찜, 밥, 찌개 등)인지에 따라 이름을 붙여 왔다. 즉, 닭을 칼로 도리쳐서 만든 탕이 ‘닭도리탕’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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