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방송인이자 개그맨 신동엽이 2013년 10월2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센터에서 열린 '스타일아이콘어워즈 2013'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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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이 그랬다. 천성적으로 성대가 약해서 '1박2일', '런닝맨'처럼 강호동 유재석이 날아다녔던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한창일 때 힘들었다고. 야외 녹화에서는 어느 정도 목청을 높여줘야 하는데 금세 목이 쉬니까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방송가에선 "신동엽도 한물갔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 시절을 견디고 지금까지 30년 넘게 국민 MC 자리를 지키는 비결에 대해 몇 해 전 그는 잘 하는 것에 더 집중한 덕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약점을 보완하는 데 매달리기보다 잘 하는 것을 더 잘 하기 위해 애썼다는 얘기다. 자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외 프로 전성기에도 신동엽은 '동물농장', '안녕하세요'처럼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스튜디오물을 집중 공략했다. 화무십일홍(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이라 했던가. 야외 프로의 광풍이 잦아들자 탁월한 완급조절과 재치 있는 애드리브가 토크쇼와 콩트에서 진가를 발휘하면서 신동엽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20년 정도 이곳저곳에 고개를 들이밀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어렴풋이 느껴지는 게 있다. 신동엽의 말이 맞다. 약점을 보완해서 성공한 브랜드는 없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마찬가지다. 자꾸 못하는 것을 지적받으니 온통 약점을 메우는 데 에너지를 쓰기 십상이지만 그런 전략으론 차별화할 수 없다. 롱런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첫 손가락에 꼽는 비결이 자신만의 색깔이다.
검찰총장 출신 정부 5년을 계절로 치면 이제 막 초여름 문턱에 들어섰다 해야 할까. 한창 가뿐 숨을 내쉬며 내달려야 할 시점에 주춤거리는 검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겹친다. 검찰 본연의 색이 옅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사표 반려 거짓 국회보고 의혹(2021년 2월 고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성접대 의혹(2022년 10월 검찰 송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정숙 여사의 외유성 인도 출장 의혹(2023년 12월 고발) 등 굵직한 사건들의 결론이 함흥차사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수사도 그렇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 묵혔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느 만큼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모든 상황을 정당화하진 못한다. 애당초 검찰의 의미는 수사에 있다. 수사하고 결론내지 않는 검찰은 오히려 혼란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의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검찰을 '기소청'으로 만들겠다는 정치권의 으름장을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검찰이 다 잘 할 순 없다. 어느 조직, 어느 개인도 그럴 수 없다. 코너에 몰릴수록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다른 것은 내려놔야 길이 보인다. '묵히는 것'이 검찰의 주특기가 돼선 곤란하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지난 14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수사는 수사"라고 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어느 검사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서초동을 오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안다.
얼마 전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이대로 가도 대한민국은 괜찮은 겁니까"라고 물은 게 화제다. 변화의 시대, 롱런의 비결은 무엇인가. 검찰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심재현 법조팀장(차장)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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