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출석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
0.03% 넘어야 음주운전 혐의 적용돼
0.03% 넘어야 음주운전 혐의 적용돼
A씨가 낸 사고로 파손된 차량. [사진 출처 = 대전경찰청, 연합뉴스] |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량 7대를 들이받고 그대로 달아난 운전자가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 사실을 시인했음에도 경찰이 해당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를 내고 한참 뒤 경찰에 출석해 측정한 혈중알코올농도가 0.00%였던 탓이다.
27일 대전 경찰에 따르면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량 7대를 들이받은 뒤 자신의 차를 그대로 두고 달아난 50대 여성 A씨가 곧 ‘사고 후 미조치(물피 뺑소니)’ 혐의로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을 시인했지만, 그가 사고 발생 시점부터 38시간이 흐른 뒤 경찰에 출석해 측정한 혈중알코올농도(0.00%)가 수사에 걸림돌이 됐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으로 확인돼야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시간 경과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추하는 ‘위드마크(Widmark)’ 역시 통상적으로 운전자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는 판례가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A씨에게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고, 예상 형량이 낮아 구속영장도 신청하지 않을 방침이다.
A씨 사고는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도주했다가 술이 깬 뒤 경찰서에 출석한 가수 김호중씨의 사례와 흡사하다. 처음엔 부인하다가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등의 증거를 제시하자 본인이 음주운전을 시인한 점도 유사하다.
다만 김호중씨는 사람을 다치게 했기 때문에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 신청이 가능했다. 반면 차량만 파손된 A씨 사고에는 같은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 단순히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를 적용하면 과태료 20만원 처분이 전부다.
경찰은 음주 후 차를 몰아 사고를 낸 A씨에게 ‘사고 후 미조치(물피 뺑소니)’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음주운전이 명백하지만,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탓에 경찰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차량을 그대로 두고 간 점을 고려해 ‘사고 후 미조치’ 혐의 하나만 적용했다. 다만 경찰은 A씨가 술을 어느 정도 마셨는지 추측할 수 있는 정황 증거도 충분히 수집·확보해서 재판 과정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음주운전 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일단 도망가는 게 유리하다는 생각이 확산할 수 있어 가중처벌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확실한 정황 증거에 기댈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음주운전 판단 기준과 가중처벌 기준 등의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운전 처벌 사각지대가 맞다”며 “음주 운전 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우선 도망가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기 때문에 가중처벌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 1일 오전 2시께 서구 정림동의 한 아파트 야외주차장에서 주차된 차량 7대를 들이받았다. 사고 후 조치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옆자리에 타고 있던 남성과 달아났다.
A씨와 동승자는 사고 발생 38시간 만인 다음 날 오후 4시께 경찰에 출석했다. 두 사람은 음주운전을 부인했으나, 경찰이 A씨 일행이 들른 식당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담긴 CCTV를 제시하자 음주운전 사실을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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