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시간의 덫에 빠진 수사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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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그날밤 무너진 유치원, '왜' 찾는데 3년…檢 장기미제 역대 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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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23년 전국 검찰청 미제사건 현황. /그래픽=김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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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6일 오후 11시를 넘은 심야. 인근 다세대주택 공사장의 흙막이가 무너지면서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이 붕괴됐다. 경찰은 사고 발생 4개월 만인 2019년 1월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지만 더 이상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잦은 인사와 사건 재배당으로 검찰은 3년이 지난 2021년 11월30일에야 시공사 안전책임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지난해 10월 1심에선 피고인 11명에게 전원 유죄가 선고됐다. 사고 발생 5년 만이었다. 사고 당시 상도유치원을 다녔던 7살 아이는 그 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다.
26일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최근 10년간 전국 지방검찰청 미제사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사건수리 이후 6개월이 넘도록 처리하지 않은 사건이 6594건으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4년 989건과 비교해 차이가 크다. 2021년 수사권 조정 당시 2503건에 견주면 3배가량 늘었다.
전체 수사사건에서 장기미제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검찰에서는 당초 사건 배당 후 3개월을 통상적인 사건 처리 기준으로 관리한다. 온라인 수사결정시스템에서 사건을 수리한 지 3개월 미만인 경우엔 사건이 검은색으로 표시되다가 3개월이 넘으면 초록색, 4개월을 넘으면 빨간색으로 바뀐다. 말 그대로 수사에 '빨간불'이 켜진다. 4개월 초과 사건은 결재라인도 기존 부장검사에서 차장검사로 바뀐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왼쪽)과 심우정 차관이 지난 20일 경기 과천시민회관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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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는 장기미제 증가 원인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을 꼽는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도 지난 2월 인사청문회에서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와 재판 현장에서 형사사법 절차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며 개선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2014년 이후 10년째 동결된 검사 정원이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보이스피싱·전세사기 등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자가 많거나 수사 난도가 높은 사건이 이어지면서 일선 검사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수사 현장에 투입되는 젊은 검사들은 지쳐 떠나고 관리자급인 경력 15년 이상의 고참검사 비중이 늘어나는 역피라미드 구조가 심해진 것은 또다른 부작용이자 악순환의 고리로 지적된다. 법조계에선 검사 수를 늘리는 검사정원법 개정안 처리를 해법으로 보지만 검찰 조직에 부정적인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이달 말 임기가 만료되는 21대 국회는 물론, 22대 국회에서도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일선 수사 현장에서는 최근 보안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포렌식 수사에 드는 시간이 크게 늘어난 것도 수사 지연에 무시 못 할 영향을 미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압수한 자료를 포렌식할 수 있는 참관실이 부족해 손도 못 댄 채 6개월이 지나는 사건도 상당하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분야별 범죄에 대한 전문성과 수사역량을 강화하고 수사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운용하는 등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건처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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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걸리던 수사, 2년 각오한다"…뉴노멀 된 수사지연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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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미제 사건 늘어나는 검찰 수사 지연 원인/그래픽=이지혜 |
"수사지연이 '뉴노멀'이 됐어요. 장관이 나서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검사들이 몇이나 될까요."
검찰이 6개월이 넘도록 수사하는 사건 수가 지난해 6500건을 넘기면서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을 두고 검찰 출신 한 법조인이 꺼낸 얘기다. 검찰 내 구조적인 문제가 얽히면서 수사지연이 일상화된 만큼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 법조인은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에서 체감하는 사건 처리 기간은 2배 이상 늘었다"며 "고소해서 사건이 처리되기까지 기간을 전에는 1년 정도로 생각했는데 (검수완박 후) 지금은 2년이 넘을 수 있다는 걸 각오한다"고 말했다.
수사지연이 일상이 된 원인으로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과 2022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시행 이후 검찰과 경찰 사이에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 점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많다. 과거에는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을 검사가 4개월 안에 기소든 무혐의 종결이든 처리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어떻게든 결론을 냈지만 이젠 경찰에 보완수사를 명목으로 돌려보내면 아무 책임이 없는 게 맹점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했느냐는 문제를 논외로 하면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 요청을 할 경우 사실상 사건을 처리한 것으로 분류되고 새로운 사건으로 분류되면서 보완수사를 요청한 검사가 책임지는 사건이 아니게 된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청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덜 수 있게 됐으니 골치 아픈 사건은 대거 '핑퐁 사건'이 되고 결국 장기미제가 되는 것"이라며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이 계속 바뀌니까 검찰에서도 사건이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에 수사지휘권이 있었을 때는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한 뒤에 보완수사가 길어지면 직접 담당 경찰에 연락해서 소통하고 도움을 주거나 협력했는데 이런 통로 자체가 없어지니까 사건이 공중에 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도적인 요인 외에 사건이 복잡해지면서 수사가 어려워진 것도 수사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보이스피싱이나 디지털 성범죄 등 첨단기술이 결합한 사건이 늘어난 데다 일반 사건에서도 휴대폰 기록 등 디지털 증거를 확보해 조사·분석하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 됐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2021년 징역 42년을 확정받은 조주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당시 수사를 위해 박사방 가담자들의 텔레그램을 비롯한 메신저, 휴대폰 사용기록 분석과 가상화폐로 받은 범죄수익을 추적하는 데 대규모 인적·물적 수사력을 투입했다.
최근 늘어난 유사수신·전세사기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많게는 수백, 수천명에 달해 일일이 조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점도 수사 난제로 꼽힌다.
법조계에서는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수사 난도가 높아지지만 수사 인력은 10년째 그대로라는 지적도 나온다. 검사정원법에 따른 검사 인력은 2014년 이후 2292명으로 10년째 동결됐다.
법조계 한 인사는 "이른바 '기수 파괴 인사'가 단행되면 선배 기수가 검사직을 내려놓던 과거와 달리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검사들이 늘면서 일선에서 수사를 담당할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도 쉽지 않다"며 "세상이 복잡해지고 사건은 늘어나는데 의사 수만 늘릴 게 아니라 검사 수가 적당한지도 고민할 문제"라고 말했다.
조준영 기자 cho@mt.co.kr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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