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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물가’ 잡게 ‘임금’ 올리지 마,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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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생산자 물가가 5개월 연속 올랐다. 지난 22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김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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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 논설위원



지난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양산했다. 1분기 월평균 가계소득은 512만2천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 증가에 그쳤다. 물가상승률(3.0%)을 뺀 ‘실질’ 변동률로 보면 1.6%나 감소한 것이었다. 1분기의 실질소득만 보면 ‘7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한 것이었다. 근로소득만 따로 보면, ‘2006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폭으로 감소’한 것이었다.



그런 수치가 나오게 된 내막을 들여다보면, ‘너무 호들갑 떤다’고 못마땅해할 전문가도 있을 것 같다. 일리 있다. 실질소득 감소가 주로 5분위 가구(소득 상위 20%)의 근로소득 감소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소득 가운데 특별급여(성과급)가 크게 줄었다. 올해 1, 2월까지 통계가 나와 있는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특별급여는 월평균 82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5%나 급감했다. 대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다. 특별급여는 12~2월에 주로 지급하는 것이라, 2분기부터는 그 영향이 크게 줄어든다. 1인 이상 사업체의 올해 1, 2월 정액 급여가 3.4%, 3.5% 증가한 것으로 보아, 2분기에는 가계 실질소득이 ‘7년 만에 최대폭’, 근로소득이 ‘통계 작성 이래 최대폭’ 감소하는 일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1분기의 심각한 상황에서 급격히 회복된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최근 3년간, 노동자 가계의 고통은 근로소득이 물가만큼 오르지 않는 데 뿌리가 있다. 그 고통은 누적되는 것으로, 물가상승률이 낮아진다고 바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통계를 보면,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월평균 실질임금은 2022년 0.2% 줄고, 2023년 1.1% 감소했다. 올해는 2월까지만 보면, ‘특별급여’의 영향으로 2.4% 감소했다. 전체 노동자의 84%가 일하는 상용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2022년 0.7% 감소하고, 2023년 1.4% 감소했다. 올해 1분기 가계 실질소득 조사 결과는 그런 추세가 아직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해준 것이다.



1분기 가계 실질소득의 감소가 더 놀랍게 다가오는 것은 1분기 국내총생산이 예상 밖의 큰 폭 성장을 한 것과 반대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전분기에 견줘 1.3%(연율 5.3%) 실질 성장했으며, 전년 동기 대비로 3.4% 성장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큰 폭 성장에 따라 한국은행은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올렸다. 그러나 가계소득이 늘지 않으면, 그 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



이달 초 정부는 2년간 계속 열어온 ‘비상경제장관회의’ 명칭에서 ‘비상’을 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최근 국민보고에서 더 깊이 민생을 챙기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각오를 밝힌 데 부응하는 측면”에서 그랬다고 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 말에, 대통령실이 25일 브리핑에서 답을 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을 두고 “양적인 면에서도 서프라이즈지만 내용 면에서도 민간 주도의 역동적인 성장 경로로 복귀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재정정책이 먹통이 되어 정부 소비의 성장기여도가 0%포인트였던 것을 그렇게 포장하는 건 역사에 남을 우스갯거리가 아닐 수 없다. 향후 경제정책이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는 비극이다.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긴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긍 못 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미국보다 2%포인트 낮은 수준에서 동결을 이어가고 있다. 한-미 금리 차가 벌어져 환율이 크게 올라, 물가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해 재정지출을 졸라매야 한다고 했다. 너무 졸라매서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해 임금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까지 나섰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2.5%로 억제했고, 내년치 협상에서도 경영계가 요구하는 ‘업종별 차등 적용’에 힘을 실으며 억제 기조로 나서고 있다. 실질임금, 실질소득 감소는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일본이 오래전부터 앓고 있는 ‘가계소득 부진과 이에 뿌리를 둔 내수 소비 부진’의 병증이 우리 경제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지 꽤 오래다. 윤석열 정부 들어 3년째 진행되고 있는 실질임금 감소는 그 병증을 한 단계 심화시키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 경제팀은 눈을 꼬옥 감고 있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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