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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암 수술받고 9개월, 첫 예약부터 ‘취소’…서울대병원 휴진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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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유방센터를 찾은 유방암 환자 유아무개(55)씨가 의대 교수 집단 휴진으로 취소된 유방암 영상검사 일정을 들어 보이고 있다. 검사 이름 옆에 파란색 색연필로 ‘취소’라고 적혀 있는 모습. 김채운 기자


“지난해 9월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오늘 수술 뒤 첫 영상 검사를 받기로 했는데, 담당 교수님이 휴진 참여하셔서 검사가 취소됐대요. 검사를 해야 재발 우려도 알 텐데.”



유방암 수술을 받고 9개월 만에 다시 서울대병원을 찾은 환자 윤아무개(55)씨는 6월17일로 일정이 적혔으나 그 위에 ‘취소’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덧 쓰인 영상검사 예약 안내문을 내보였다. 이날 예정된 검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검사였다.



다음 검사일을 27일로 다시 잡았지만, 병원은 “그때도 가봐야 안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윤씨는 “다른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사태가 길어진다면 큰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집단 휴진에 돌입한 첫날인 17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병원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이미 상당수 환자의 진료·수술 일정이 연기됐고, 예정대로 진료를 받기로 한 중증 환자들만 병원을 찾았기 때문이다.



병원 갑상선센터 등은 텅 빈 채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붙여 놓은 휴진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비대위는 이날 소속 4개 병원(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에서 교수 532명이 전면 휴진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진료와 수술 등을 하는 전체 교수(970명)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한겨레

1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암병원 2층 갑상선센터가 텅 비어 있는 모습. 출입문 오른쪽에는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붙인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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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진료를 받은 중증 환자들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확답을 받기까지 마음을 졸였다고 입을 모으며, 정상진료를 하는 의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날 췌장암 말기 환자인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 암 병동을 찾은 이광명(46)씨는 “오늘 진료 안 받으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진료가 취소될까 걱정이 많이 됐다”며 “정상진료 하신다고 해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대장암 4기로 2주에 한 번씩 항암치료차 병원을 찾는 김정미(65)씨도 “휴진 이야기에 걱정이 돼서 지난주에 교수님께 ‘저 어떡해요’ 물어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며 “새로운 외래 진료는 안 받아도 기존 환자들은 봐주시는 모양”이라고 했다.



한겨레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유방센터를 찾은 유방암 환자 유아무개(55)씨가 의대 교수 집단 휴진으로 취소된 유방암 영상검사 일정을 들어 보이고 있다. 검사 이름 옆에 파란색 색연필로 `취소\'라고 적혀 있는 모습.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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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사태의 ‘장기화’다. 뇌신경 질환을 앓는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은 보호자 김아무개(66)씨는 “3∼4개월 만에 병원에 온 건데 오늘은 검사만 했다. 다음주에 검사 결과도 보고 약도 계속 처방을 받아야 하지만, 교수님이 계실지 안 계실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여동생의 정신과 진료에 동행한 보호자 이아무개(56)씨도 “대학병원은 동네병원처럼 당일에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달 전에 예약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휴진한다고 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 길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애초 이날 오전 22일까지만 휴진을 하겠다고 밝혔던 비대위는 이를 번복하며, “진료 일정은 1주일 단위로 변경된다”고만 밝혔다.



휴진 일정이 제대로 공지되지 않아 혼란을 겪는 환자들 사례도 적지 않다. 췌장암 환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휴진 여부를 질문해도 간호사가 잘 모르더라” “서울대병원에 전화로 문의하니 ‘휴진 문자 못 받았으면 진료 맞다’며 화를 내더라”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성명을 내어 “서울의대 비대위는 응급·중증환자가 피해 보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비응급이나 중등도 환자는 불안과 피해를 겪어도 된다는 의미냐”고 항의하며 무기한 휴진 철회를 촉구했다. 18일로 예정된 의사협회의 집단 휴진에 대해서도 “지난 넉달간 의료공백 기간 동안 어떻게든 버티며 적응해온 환자들의 치료와 안전에 대한 고려가 일절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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