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의회 의사당을 배경으로 ‘민주주의 축제’를 알리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독일은 1949년 5월 23일 서독 기본법 발효 75주년을 맞아 이날부터 26일까지 사흘간 민주주의 축제 행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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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지도자들은 이런 현실이 못내 아쉬웠다. 당장 급한 것은 새 헌법(Constitution)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통일도 안 된 상태에서 덜컥 헌법부터 제정하면 오히려 분단이 고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서독이 1949년 독립과 동시에 헌법 말고 기본법(Basic Law)을 채택한 이유다. 그 입법에 관여한 이들은 ‘기본법은 통일이 될 때까지의 과도기에만 효력이 있으며, 향후 통일이 되면 동독까지 포함한 전 독일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제정된 헌법으로 대체한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89년 동서독을 가른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독일 통일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 방법이 문제였다. 기본법에는 이미 통일에 대비한 장치가 마련돼 있었다. ‘독일의 다른 주(州)가 연방공화국(서독)에 가입하면 그 주에도 기본법의 효력이 미친다’라는 내용의 제23조가 그것이다. 이에 따라 동독에 속해 있던 5개주가 새롭게 연방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이듬해인 1990년 통일이 완성됐다. 국내 대표적 독일 전문가로 불리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저서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에서 서독 기본법 23조를 “신(神)의 한 수”라고 부르며 높이 평가했다.
기본법 탄생 75주년을 맞아 독일은 요즘 들뜬 분위기다. 24일부터 사흘간 일명 ‘민주주의 축제’가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다. 통일이 이뤄지면 정식 헌법으로 대체되며 사라질 예정이었던 기본법은 1990년 이후에도 그대로 살아남아 독일의 헌법 역할을 하고 있다. 애초 워낙 정교하게 잘 설계한 나머지 굳이 다른 것으로 바꿀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민주주의 축제 개막 연설에서 기본법을 가리켜 “자유, 민주주의, 정의가 공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토대”라고 불렀다. 정치인들이 허구한 날 개헌 타령만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부러운 노릇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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