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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15살 납북 뒤 ‘간첩·북한 찬양’ 누명…반세기 만의 무죄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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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4일 오후 김성대(69)씨가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며 환하게 웃고 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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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53년 만이에요. 내가 53년 동안 가지고 있던 멍에를 오늘에야 내려놓는 거예요.”



그가 열다섯살 때다. 1971년 용돈을 벌 겸 오징어배 ‘승운호’에 탔는데, 이 배가 북한으로 납치됐다. 13개월 만에 귀환한 그를 사람들은 간첩 취급했다. 납북 이후 53년, 김성대(69)씨의 억울함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고향에 돌아온 김씨는 불법 구금돼 조사를 받고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 김씨는 다른 선원들과 함께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1972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974년에는 “김씨가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하고 다녔다”며 경찰은 다시 한번 그를 감금했다. “(북한에 가보니) 과수원에 사과가 억세게 많았다” “탁아소에 가보니 애들이 자기 부모도 없이 잘 자라고 있더라” “농장시설이 잘되어 있더라” 등의 발언을 주위 사람에 했다는 혐의였다. 1974년 체포돼 불법 구금되고 조사를 받아 오다가, 1975년 징역 단기 1년 6월, 장기 2년을 선고받아서 겨우 스무살 남짓한 나이에 그는 대전교도소에 수감됐다.



51년이 지난 2023년 재심을 통해 반공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받아 김씨는 ‘간첩 혐의’를 벗었다. 하지만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죄는 여전히 남았다. 김씨는 반공법(북한 찬양·고무) 사건에 대해서도 지난해 3월 재심을 제기했다.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1부(재판장 김정곤)는 재심이 접수된 지난해 3월 이후 1년2개월 만인 24일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판결 이후 49년 만이다. 재판부는 당시 판결과 관련해 “원심이 판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에게 찬양·고무의 고의가 있었다거나, 피고인의 행위가 구 반공법에 해당되는 찬양·고무 행위로 반국가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사실오인과 법리오해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으므로, (김씨의 무죄) 주장에 이유가 있다”고 봤다. 검찰 역시 지난달 결심 공판 때 “개정된 국가보안법 취지에 따라 발언의 위험성을 재검토했고, 발언의 내용과 경위, 대상, 피고인의 연령 등을 종합해 볼 때 실질적 위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김씨에게 무죄를 구형했었다. 최후 변론에서 김씨는 “재판장님, 검사님. 70년 동안 (살면서) 제가 처음으로 이렇게 이야기하게 됐다. 북한에 있는 동안 나 혼자 탈출 시도 하다 붙잡혀서 3일간 감금도 됐었다. 대체 뭐가 좋아서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라며 “더 이상 우리 애들한테도 숨겨야 하는 것 없이 떳떳하고 싶다”고 울먹였다.



이날 재판부의 무죄 선고가 나고 나서야 김씨는 비로소 미소를 찾았다. 이날 방청석에는 김씨의 아내, 딸, 여동생이 함께했다. 김씨의 딸 역시 재심이 시작되고 나서야 아버지가 과거 당했던 불법 구금 등 국가 폭력을 알게 됐다.



“오늘 법원에 오는 것도 손주들한테는 서울 병원에 간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간첩이라느니, 북한을 찬양했다느니 이런 혐의를 받는 상황에서, 혹시 내 손주가 알게 됐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는 내가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됐어요. 하지도 않은 일로 전과가 기록되어, 혹시 내 자녀들이나 손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불안해 온 세월이 길어요. 늦게라도,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전날까지도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는 김씨는 “오늘은 편히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 웃으며 법원을 나섰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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