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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기자수첩] ‘폭탄 유상증자’ 공모자가 된 증권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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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유상증자는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단어다. 유상증자 발표 소식과 함께 주가가 대개 내리막을 걷기 때문이다.

냉정히 말하면 유상증자는 죄가 없다. 새로 주식을 발행해 기업에 투자금이 유입되는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유상증자로 주가가 오르는 일도 있기는 하다.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도 그렇다. 스타트업 투자 유치 또한 유상증자와 같은데, 스타트업의 경우엔 무조건적으로 회사에 좋은 쪽으로 해석된다.

유상증자는 유독 바이오 기업 주주들의 꿈자리를 찾아다닌다. 마일스톤을 달성하거나, 기술 수출을 하기 전까지 바이오 기업은 늘 현금 부족에 시달린다. 결국 자금 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를 찾게 된다. 유상증자는 적법한 자금 조달 방법이고, 상장사엔 꽤 용이한 수단이다. 기업들이 어떻게든 상장사 자격을 유지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오주 유상증자는 유독 욕을 먹는다. 아직 보여준 게 없는 상황이다 보니, 투자자들은 거세게 반발한다. 최근 바이오 기업 샤페론이 유상증자로 시가총액(370억원) 규모에 육박하는 350억원을 모으겠다고 밝히면서 개인 투자자 원성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성승용 샤페론 대표는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불난 주주들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유상증자는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업이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수단이다. 그런 만큼 진행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주주들의 마음을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주관사가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니까, 어떻게 하면 주가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주관사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기업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만 하면 역할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샤페론의 유상증자 주관을 맡은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유상증자 주선으로 억대 수익을 올리게 된다. 350억원 모집에 모두 성공하면 3억5000만원, 실패해도 2억5000만원은 보장받는다. 현금 고갈로 협상력이 약해진 샤페론의 사정을 잘 파고든 덕일 것이다. 대규모 물량과 대표이사의 불참 등 고난도 유상증자에 따른 보수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최근 유상증자를 보면, 최대주주부터가 소극적으로 임한다. 샤페론 외에도 퀄리타스반도체, 하나마이크론, 에코앤드림,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등의 최대주주가 청약을 하지 않거나, 소액만 하기로 했다. 주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주들은 “대주주도 기업이 못 미더우니까 돈을 태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주관사가 소액 주주들을 생각해 발행사의 최대주주를 설득하려는 노력을 좀 더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과거에는 실제로 주관사들이 이런 역할을 했다. 최대주주가 불참하는 케이스라면 왜 불참하는지를 상세히 안내하게 하고, 나중에라도 돈이 생기면 주식을 장내매수하겠다고 소액 주주들에게 약속하게 했다. 주관사(主管社)는 ‘어떤 일을 책임지고 맡아 관리하는 회사’다. 기업과 시장의 관계를 더 매끄럽게 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 자체가 ‘그 시절 라떼(나 때)’ 이야기가 돼버린 듯하다.

오귀환 기자(ogi@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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