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 몰라요, 회원제 할인점 ‘모범생’
■ 경제+
이곳에만 가면 카트가 넘치도록 물건을 산다. 대용량 식재료를 소분해 냉동실에 보관하는 방법은 유튜브에 널리 공유돼 있다. 한국에 진출한 지 30년 된 ‘코스트코’ 얘기다. 온라인 쇼핑에 밀려 대형마트가 고전하는 가운데 회원만 물건을 살 수 있는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를 찾는 발길은 여전하다. 코스트코의 철학은 간단하다. ‘좋은 물건을 싸게 판다’는 것. 소매 유통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유통계 곳곳에서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가 나오는 지금 코스트코를 다시,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1996년부터 20년 넘게 코스트코 이사회 이사를 맡은 고(故)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가장 애정한 주식 코스트코에 대해 ‘아마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핫도그 세트에는 무한 리필 음료가 제공된다. [블로그 캡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코스트코는 유료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창고형 할인마트다. 싸고 품질 좋은 자체 브랜드(PB) 커클랜드로 유명하다. 1983년 태초부터 구독형 커머스였다. 미국에선 연회비 60달러부터, 한국선 3만8500원부터다. 세계 약 1억3000만 명이 코스트코 유료 회원이다. 가장 최근 분기 멤버십 갱신율은 90.5%(북미는 92.9%)에 이른다.
회원제 할인점의 시초인 프라이스클럽 부사장 출신 짐 시네갈과 투자자 제프리 브로트먼이 1983년 미국 워싱턴주 커클랜드에서 공동 창업했다. 10년 뒤 프라이스클럽을 인수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북미·유럽·동아시아 등 14개국에 861개(2023년 기준) 점포를 운영 중이다. 미국(580여 개)에 압도적으로 많다.
김경진 기자 |
매출은 월마트·아마존에 이은 3위(지난해 2422억9000만 달러, 약 330조원)지만, 주가 상승률은 월마트보다 한 수 위다. 지난해 월마트 주가가 9.8%(143.6→157.65달러) 오를 동안 코스트코 주가는 44.6%(456.5→660.08달러) 뛰었다. 지난 10일 종가는 787달러다. 소비자 충성도가 높고, 뛰어난 상품력을 무기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게 주가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고객만족도는 더 뛰어나다. 지난해 미국고객만족지수(ACSI) 조사에서 코스트코는 트레이더조·샘스클럽(월마트의 창고형 매장)·타깃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가격 대비 품질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얻었다. 월마트는 21위에 그쳤다.
김영옥 기자 |
전문가들은 ‘상품력’을 핵심 경쟁력으로 꼽는다. 1996년 출시한 PB ‘커클랜드 시그니처’는 식품부터 생수·와인·롤티슈·의류·골프공까지 ‘써 본 사람은 안다’는 가성비를 자랑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코스트코 매출에서 PB 제품 비중이 30% 이상 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의 다른 유통사(약 20%)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PB 매출 비중은 20%, 1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김주원 기자 |
지난해 겨울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골드바’ 사태는 코스트코 상품 기획력이 또 한 번 빛을 발한 사례로 꼽힌다. 코스트코가 지난해 10월부터 온라인몰에서 1온스 24K 골드바를 개당 약 2000달러에 판매하자 내놓는 족족 매진됐다. BMO글로벌자산관리의 최고투자책임자 사디크 아다티아는 “경기 혼돈기엔 금 구매가 활발한데, 금을 처음 사보는 사람들에게 코스트코는 친숙함과 편안함을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 웰스파고는 골드바 판매액이 월 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김주원 기자 |
코스트코 제품은 품질이 좋다는 믿음은 소비자 머릿속에 어떻게 뿌리를 내린 걸까.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진열 품목을 3800개로 유지한다. 다른 대형마트(5만~10만 개)보다 훨씬 적다. 품목당 진열 브랜드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한 브랜드에서 대량으로 구매하니 싸게 매입할 수 있다. 품질이 우수한 상위 업체와 손잡기는 더 쉬워지고, 이는 탁월한 상품력으로 이어졌다. 코스트코는 품목별 1~2위 업체만 상대한다는 얘기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스트코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매장 운영을 한다”면서 “가끔 프로모션을 하는데, 굉장히 희귀하거나 비싸서 다른 마트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제품이라 의외성과 호기심, 즐거움을 자극한다”고 평가했다.
김주원 기자 |
멤버십 갱신율 90%를 상회하는 비결은 뛰어난 상품력에, 변치 않는 최저가 전략을 더해 완성된다. ‘최고 품질의 상품을 가능한 가장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코스트코의 철학이다. 최저가가 가능하려면 투입하는 ‘비용’도 최소여야 한다.
창업 때부터 제조사 제품 마진율이 14%(PB 제품 마진율은 15%)를 넘지 않도록 했다. 이윤이 될 돈을 상품에 투자하고 부족분은 연회비로 메운다. 지난해 1억2900만명 회원에게 받은 연회비 46억 달러는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여성용 캘빈클라인 청바지가 약 55달러에 팔리던 때, 코스트코가 이를 27.5달러에 구입해 29~30달러에 팔다가 22달러까지 매입 급액을 낮춘 뒤 마진 0.99달러를 붙여 22.99달러에 팔았다는 일화도 있다(WSJ). 마진율이 4.3%에 불과한데도 1000만 달러 이윤을 남겼다.
김주원 기자 |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변수는 매출액 중 판매비와 관리비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국내 대형마트와 코스트코의 판관비율을 조사해 보니 코스트코는 2021년 9.2%, 2022년 8.7%, 2023년 8.9%였다. 코스트코코리아의 판관비율은 11~12% 수준으로 글로벌 본사보다는 다소 높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이마트는 24.4%→25%→25.6%로 늘었다. 홈플러스 34%(2021)→35%(2022), 롯데쇼핑(백화점 등 다른 쇼핑 부문 포함) 40.7%→41.5%→43% 역시 마찬가지였다.
낮은 판관비율은 코스트코가 높은 매출원가율에도 영업이익률을 높일 수 있었던 비결로 꼽힌다. 2023회계연도 코스트코의 영업이익률은 3.1%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마이너스, 롯데마트는 1.5%다. 이마트가 흑자였던 2022년 영업이익률은 0.5%였다.
‘모든 것을 단순하게 유지하는 것’이 코스트코 정신이다. 가령 코스트코 매장에는 장식이 거의 없다. 지게차가 팔레트 판 그대로 제품을 쌓는 등 매장을 창고처럼 활용하기 때문에 인력 운영비도 적게 든다. 광고비도 거의 쓰지 않는다. WSJ는 “이것이 코스트코가 30년 연속 10%씩 성장한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코스트코의 미래를 밝게 본다. 경기 침체와 온라인 공세 속에도 회원 수가 늘고 있는 데다 PB 제품에 대한 신뢰와 매출도 꾸준히 우상향이라는 이유에서다. 연회비 인상은 변수다. 코스트코는 5~6년마다 연회비를 올렸는데 가장 최근은 2017년이 마지막이었다. 주가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최근의 고물가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국내 대형마트들은 코스트코에서 뭘 배워야 할까. 상품력과 최저가 전략이다. 고객을 록인(lock-in, 묶어두기)하려면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제품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글로벌 소싱 능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1985년 이후 1달러50센트에 파는 ‘핫도그 콤보’는 코스트코 최저가 정책의 상징이다. 고객을 매장으로 유인할 뿐만 아니라 변치 않는 가격으로 신뢰를 높인다. 시네갈이 CEO에게 “핫도그값 올리기만 해봐라, 내가 당신 죽여버리겠어”라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경제+ |
보잉의 추락, 티켓값 올린다…금기 손댄 그들이 부를 재앙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5910
“빅테크, 삼성·SK 눈치 볼 것” HBM 혁명 성공 때 벌어질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7353
한국형 주4일제 해본 그들 “놀금 위해 9일 갈아 넣는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1058
회장님이 ‘용돈 2억’ 쐈다…부영그룹 김대리 목돈 비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0490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