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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손주 4명 양육 떠안은 80대 노부부, 아들 상대로 소송 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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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역을 이동 중인 할머니와 손자. 기사 내용과 연관 없음.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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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부모에게 4남매의 양육을 떠넘기고, 자녀들의 기초생활수급비까지 가로챈 친부에 대해 법원이 친권 일부 상실을 결정했다.

21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미성년 손주 4명을 양육하고 있는 A(80대)씨는 자신의 아들이자 손주들의 친부인 B씨를 상대로 친권 상실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결혼생활로 오남매를 낳아 양육하던 중 부인이 병으로 사망하자 재혼했다. 다섯 남매는 계모와 불화를 겪었다. 철모르는 아이들이 계모를 ‘아줌마’라고 부르자 계모는 화를 내며 거친 언사를 서슴지 않았고, 친부 B씨는 이런 상황을 방관하기만 했다.

결국 아이들은 경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생활하던 조부모 A씨 부부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A씨 부부는 오남매 중 아직 미성년인 4남매의 양육을 떠안게 됐다.

아이들을 키우기로 결정은 했지만, 소액의 국민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A씨 부부의 경제적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다행히 미성년 손주 4명이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돼 매달 현금 160만원과 쌀 40㎏을 지원받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 작년 8월 고교생 C양은 기초수급비가 송금되던 자신의 은행 계좌가 폐쇄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은행에 확인한 결과, 친부 B씨가 딸 C양의 은행 계좌를 폐쇄한 뒤 자신의 계좌를 재개설해 기초수급비를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B씨가 친권자이자 법정대리인 권한을 악용한 것이었다.

이에 A씨 부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지원금 중단을 요청하고,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미성년 자녀들에 대한 B씨의 친권행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재판을 시작했다. 또한 80대 노부부보다는 아이들의 고모를 미성년 후견인으로 선임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재판 과정에서 B씨는 계모의 학대 행위를 극구 부인하며 계모의 편에 섰다. 또한 자신의 부모인 A씨 부부가 기초수급비를 임의로 사용할까 봐 인출해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었다. 수급비 지급 은행 계좌와 연결된 B씨의 체크카드로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결제가 된 사실이 확인됐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조영민 부장판사는 “친권자인 B씨가 미성년 자녀들 앞으로 지급된 지원금을 임의로 출금한 사실을 알 수 있다”며 “B씨가 자녀들의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자녀들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B씨의 친권 중 법률행위 대리권 및 재산관리권의 상실을 선고하고, 고모를 후견인으로 선임했다.

A씨의 소송을 대리한 공단 소속 나영현 공익법무관은 “친부모의 친권은 강하게 보호되어야 하지만, 자녀의 보호와 성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경우 친권을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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