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4 (화)

이슈 영화계 소식

서울대 법대 나와 영화인생…87세 김동호의 눈물 “배우로 칸 초청, 꿈 같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다큐 '영화 청년, 동호' 16일 칸 상영

김동호 부산영화제 전 위원장 영화인생

"아흔 앞두고 배우로 칸 초청 꿈 같다"

중앙일보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로 올해 제77회 칸국제영화제를 찾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 18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 크루아제트 해변에 마련된 한국 영화진흥위회 부스(한국관) 앞 해변에서 포즈를 취했다. 칸=백은하 배우연구소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90이 가까운 ‘올드보이’가 배우(출연자) 자격으로 칸에 초청 받아 왔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꿈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동호(87)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가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칸 클래식 (Cannes Classics) 부문에 초청돼 16일(현지 시간)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다.

“지난 24년 동안 부산 국제영화제 위원장 혹은 심사위원 자격으로 칸 영화제를 찾았지만 늘 감독이나 배우들의 레드카펫을 뒤따라 들어가는 것이 제 역할이었죠. 특히 상영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이면 기립박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 찍을 준비를 했었고요. 하지만 이번엔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저를 향해 박수를 치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했어요. 그러다 약간 눈물도 났고 뭔가 주체할 수가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18일 프랑스 칸 크루아제트 해안에 마련된 영화진흥위원회 부스(한국관)에서 만난 김 위원장의 소감이다.



서울대 법대 나와 영화인생…59세에 부산영화제 출범



중앙일보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에서 임권택(사진) 감독은 부산영화제 출범 이전부터 1980년대 영화진흥공사 사장이었던 김동호 위원장이 세계 각국 국제영화제를 발판으로 한국영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 크게 힘썼다고 돌아봤다. 사진 칸국제영화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김량이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촬영한 ‘영화 청년, 동호’에는 2010년까지 부산 국제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까지의 과정 뿐 아니라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 배우 조인성·박정자·예지원, 감독 임권택·이창동·고레에다 히로카즈 등이 그와의 기억과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더한다. 그리고 “모든 영화인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간 김동호의 삶을 시작부터 따라간다.

1937년생인 김동호는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문화공보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30년 넘게 공직에 몸 담으며 독립기념관, 예술의전당,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국악당 등의 초석을 일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 이후를 준비할 59세에 김동호는 부산 영화제를 출범시키는 인생 2막을 열게 된다. "1995년에 부산의 젊은 친구들이 국제영화제를 준비하는데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어요. 결국 그들의 열정에 넘어가서 수락을 했죠."



칸 닮은꼴 부산, 세계 영화인의 성지로



중앙일보

1989년 7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참가했던 대표단 귀국 모습. 왼쪽부터 임권택 감독,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강수연, 김동호 영화진흥공사 사장. 배우 강수연과 김동호 위원장은 이후 부산국제영화제가 암초에 부딪힌 시기, 집행위원장과 이사장으로 힘을 보태기도 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1년 남짓의 과정에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영화를 선정하고, 게스트와 심사위원을 초청해야 했다. “맨땅에 헤딩하기처럼 일단 칸 영화제부터 가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처음 밟은 프랑스 칸은 정말 대단한 영화제였다. "영화진흥공사에서 일하면서 4년 동안 잘 사귀어 놓은 영화제 관계자들이 있었고 칸에서 점심 초청을 했죠. 그 자리에 칸 영화제에서 둘, 베를린에서 셋, 뮌헨에서 하나, 몬트리올, 낭트… 그렇게 총 15명이 모였어요. 지금도 그렇게 세계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15명 모을 수 있을까 싶거든요. 그날 점심 자리에서 다들 '부산에 가자!' 면서 건배를 해주었죠. 그러고 나니까 비로소 부산영화제를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칸은 바다를 품은 지리적 요건을 포함해 부산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게스트가 머물던 부산 호텔 앞은 세계 영화인의 성지가 됐다. “상영이 늦은 밤에 끝나면 갈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게스트들이 묵는 호텔 앞 모퉁이에 신문지를 깔고 포장마차를 불러놓고 판을 벌렸죠. 그랬더니 지나가는 배우, 감독, 영화제 관계자들이 모두 앉아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는 ‘스트릿 파티’가 만들어지게 됐죠”.

그야말로 페스티벌 분위기가 제대로 조성된 셈이다. 축제를 신명나게 만드는 것은 ‘영화’ 만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라는 것을 내다본 김동호의 혜안인 셈이다.



"차세대 봉준호 정부가 뒷받침해야…예산 삭감 말 안돼"



한 나라의 문화는 예술가의 개인적인 역량 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들을 지원하는 시스템과 힘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극장 관객이 4분의 1로 줄었고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라고 볼 수 있거든요. 게다가 그간 한국 영화를 견인했던 박찬욱·봉준호·임권택·이창동·홍상수 감독 뒤를 이을 젊은 감독들이 안 나오고 있는 상태죠. 이런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젊은 세대가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뒷받침입니다."

그는 특히 최근 영화제 예산 삭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국 영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창구인 영화제를 더 지원해준다면 모를까 예산을 깎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 그는 “영화제 경영을 지원하라는 말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무거운 마음을 내비쳤다.



아흔 코앞, 올해 꿈은 "극장 고민 담은 다큐 연출"



지금 이 순간 김동호의 꿈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다. 작년 2월에 캠코더를 사서 지역의 독립극장 관계자부터 일본·대만의 영화인들과 다르덴 형제, 필리핀의 브릴란테 멘도자 감독 등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어떻게 하면 극장 관객을 늘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담긴 다큐”로 올해 안에 완성할 계획이다.

인터뷰를 끝낸 그는 경쟁부문 초청작인 지아장커 감독의 ‘풍류일대’ 상영장으로 바쁘게 발을 옮겼다. 다큐 ‘영화 청년, 동호’의 영문 제목(WALKING IN THE MOVIES)처럼 '지치지 않는 뚜벅이'라고 불리는 이 청년의 발걸음은 오늘도 변함없이 영화 앞으로 향해있다.

프랑스 칸=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

프랑스 칸=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 na.wonjeong@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