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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대만 메르켈'에서 '광부의 아들'로…"새 총통, 격변 겪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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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동양의 메르켈’이라 불린 차이잉원(蔡英文·67) 현 대만 총통이 퇴임하고 그의 후계자를 자처한 민주 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65) 당선인이 이끄는 차기 정부가 공식 출범한다. 후임인 라이 당선인은 차이 총통의 ‘친미반중(親美反中)’ 정책 기조를 계승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CNN과 BBC 등은 퇴임하는 차이 총통에 대해 “자그맣고 수줍음 많은 동물 애호가가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지정학적 위기에 놓인 조국의 위상을 바꿔놨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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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퇴임하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해 4월 미국 의회 대표단의 대만 방문 중 오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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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대만을 세계지도에 올린 인물"



화장기 없는 얼굴에 단발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차이 총통은 2016년 선거에서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를 꺾고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총통에 올랐다. 이후 2020년 연임에 성공해 8년간 대만을 이끌었다. 지난 1월 총통 선거에서 라이칭더의 승리로 첫 ‘3연속 집권당’ 탄생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대만 최초의 ‘미혼 총통’으로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지지율 과반(58%)으로 퇴임하는 최초의 총통”이란 기록도 추가하게 됐다.

CNN은 차이 총통이 재임 기간 내내 미·중의 치열한 패권 싸움,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전쟁 등 다양한 위기를 겪었다고 전했다. 이어 “차이 총통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대만의 국제적 위상과 인지도를 높이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민주주의 파트너의 필수적 연결고리로서 역할을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의 웬티 성 연구원은 그를 "대만을 세계지도에 올린 인물로 평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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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 2월 대만의 한 군사 기지를 방문해 훈련 중인 군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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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는 차이 총통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치하에서 점점 더 권위주의적이고 공격적으로 변모하는 중국에 대해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대처했다”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차이 총통이 공식적인 독립 선언 등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일은 피하면서도, 중국과 차별화되는 ‘대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식으로 대중국 관계를 재정립했다고 평가했다.

차이 총통은 임기 내내 ‘중국에 강경하며 미국과는 협조’하는 외교 전략으로 미국 등 서방과의 동맹을 강화했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전략 자산으로 활용해 미국과 밀착했다. CNN은 “차이 총통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다졌으며, 그 결과 미 대선 시기에도 ‘대만에 대한 지지’는 미 의회에서 초당적 합의가 이뤄지는 몇 안 되는 사안 중 하나가 됐다”고 전했다.

민주주의에 기반한 '소프트파워'를 키워 중국의 폐쇄·보수성과 극명하게 대비시킨 것도 성공적인 전략으로 꼽힌다. 차이 총통은 집권 1기였던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이후 대만에선 매년 10월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프라이드 퍼레이드(성소수자 행진)’이 열린다. BBC는 “대만은 ‘국민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과 완전히 다르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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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프라이드 퍼레이드.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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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한 대만 독립파' 라이칭더, "차이 노선 계승"



차기 총통인 라이칭더 당선인은 민진당 내에서 가장 강경한 노선인 ‘신조류파’의 리더로, 노골적으로 대만 독립을 주장해온 ‘반중·대독파(대만독립파)’로 꼽힌다. 다만 심각한 주제도 온건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는 공감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그는 선거 기간 동안 ‘대만 독립’이란 슬로건 대신 ‘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웠다. 또 차이 총통의 노선을 이어받겠다며 급진적 이미지를 희석해왔다.

중국은 20일 취임사에 등장하는 그의 대중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라이칭더는 지난 10일 대중 강경파들을 줄줄이 포진시킨 차기 내각 인선을 발표하며 중국과 신경전을 고조시켰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지도자들은 (라이의) 매우 사소한 상징적 행위조차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19일 대만 자유시보 등은 이번 취임사 키워드는 ‘온건·자신감·책임·단결’ 등 네 가지라고 전하면서, 차이잉원 정부의 ‘민주·평화·번영’ 노선에 대한 현상 유지 의사를 밝힐 것이라 예상했다.

라이칭더는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두살 때 부친을 잃고 어렵게 살면서 대만대 의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의사로 활동하다 1994년 정계에 입문해 20년 만에 총통에 당선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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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총통(왼쪽)이 타이베이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한 후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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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린어페어스는 대만의 리더십 교체가 가장 첨예한 시기에 이뤄졌다면서 “새 총통은 격변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고조에 이른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갈등,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악화한 민심, 여소야대 상황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한편 대만 외교부는 19일 현재, 총 73개 방문단과 687명이 라이 당선인에게 축하 의사를 전해왔다고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 51개 방문단, 외빈 508명이 20일 취임식에 참석한다. 대만 수교국인 12개 나라 중 마셜제도·팔라우·파라과이·투발루 등 8곳이 국가원수 대표단을 파견한다. 비수교국 중엔 미국·캐나다·싱가포르 등이 축하단을 파견했으며, 유럽의회의 대만친선협회 의원과 영국·일본·호주·한국의 국회의원이 참석한다고 발표했다. 로마 교황청은 관례를 따라 특사를 파견했다고 밝혔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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