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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3 (목)

난민·파업 등 시각차 여전했지만…공감이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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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한호씨와 이예나씨가 3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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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차이와 다름을 넘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과 함께 갈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나와 우리가 아닌 ‘그들’을 적으로 돌려세우고 대화를 꺼린다. 이는 악순환처럼 갈등을 키우고 사회를 양쪽 끝으로 더욱 몰아간다. 한겨레가 지난해부터 실험하는 ‘한국의 대화’는 진영 간, 계층 간, 세대 간 단절의 벽을 허물려는 작은 도전이다. 나와 생각과 입장이 다른 불편할 법한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 의외로 그도 나의 ‘평범한 이웃’이란 걸 금세 깨닫게 된다. 배제와 대립이 소통을 거쳐 공감과 이해를 확장하는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대화 실험을 살펴본다.





튀르키예(터키) 서부 체슈메에서 그리스 히오스(키오스)섬까지는 지척이다. 에게해를 가로질러 18㎞만 항해하면 닿는다. 거리가 짧다 보니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서아시아 난민이 자주 찾는 루트이기도 하다. 내전으로 고향을 떠나 튀르키예에 사는 시리아 난민만 300만명이 넘는다. 9년 전 어느 날 한 무리의 시리아 난민이 체슈메에서 히오스로 향하는 페리호에 몸을 실었다. 그 배에 신한호(57)씨도 아내와 함께 탔다. 부부는 유럽 여행 중이었다. 그날 신씨의 여행은 낭만에서 두려움과 슬픔으로 범벅이 됐다. 피부색과 생김새, 언어가 다른 난민들 틈바구니에서 공포를 느끼면서도 낯선 어린아이들을 보면서는 슬펐다. 애초 선상에서 술 한잔하면서 여흥을 즐길 생각이었지만 도착할 때까지 객실을 나서지 못했다. 바로 코앞에서 배 갑판까지 가득 메운 난민을 보면서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 피난민을 떠올렸다. 그날 그는 ‘그래, 막연한 이상과 현실은 다르지’라고 확신했다.



은행에서 일하는 신씨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골치 아픈’ 일이 빚어질까 봐 걱정이다. 난민 하면 먼저 가짜 난민, 돈 벌러 온 난민,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난민 뉴스가 떠올랐다. 그는 망설임 없이 외국인 노동자, 난민 등 이주민과 이웃으로 지내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30대 후반 이예나씨의 입장은 반대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는 주저 없이 이주민과 이웃으로 지내고 싶다 했다. 난민 신청자들이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돕는 남편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이씨에게 난민은 친숙한 이슈다. 남편은 공익변호사로 활동한다. 그는 난민이 어쩔 수 없이 태어난 곳을 떠나와 극단적 상황에 내몰려 있다고 생각한다. 난민 제도가 악용된다는 가짜 난민 프레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되레 난민이 공권력에 의해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고 분노한다.



한국의 현실에서 이씨의 입장은 ‘소수’, 신씨는 ‘다수’에 가깝다. 6년 전 예멘 난민 500명가량이 내전을 피해 제주에 입국했을 때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엄격한 심사를 통해 최소한의 난민만 수용해야 한다’(62%)거나 ‘강제 출국 조처해야 한다’(20%)는 답변이 압도적이었다.



지난 30년 우리나라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모두 1400명 정도다. 최근 들어 늘어나는 추세다. 난민 신청자 수로만 보면 지난 한해 1만9천여명에 이른다. 신청보다 인정이 크게 적다. 난민을 포함해 지난해 우리나라 체류 외국인은 2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대략 5% 수준이다. 규모를 떠나 이주민은 점점 한국 사회의 민감한 이슈이자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이씨는 자신의 주관적 이념 성향을 왼쪽에, 신씨는 중간에서 오른쪽(중도보수) 사이에 위치시켰다. 이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에 여러번 참석했다. 선출된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위배했을 때는 주권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태극기 집회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자유의 하나로 봤다. 다만 그는 누굴 다치게 하거나 폭력을 수반한 집회는 경계한다. 자신을 평화주의자라 했다.



하지만 신씨는 길거리에 나와 떼로 행동하는 걸 마뜩잖아했다. 그가 촛불만이 아니라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도 싫어하는 이유다.



난민문제 상반 신한호-이예나씨
동성애 가족·노조파업도 견해차
촛불집회 찬반 조서진-도광수씨
노키즈존·증세 놓고도 관점 달라



맞짱토론 아닌 상대 이야기 듣기
커피 놓고 마주앉아 때로 추임새
신씨 “노키즈존 찬성 입장서 바꿔”
이씨 “파업에 대한 이해폭 넓어져”



생각의 거리가 꽤 먼 두 사람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소공동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한시간 반 대화를 나눴다. 처음 만난 둘은 난민 이슈에서 생각의 차이를 가장 크게 드러냈다. 또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의 자유와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에 동의하는지를 둘러싼 견해차도 컸다. 이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 중 동성애자가 있어 성적 지향을 넘어 다양한 가족 구성의 형태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신씨는 어릴 적부터 유교 사상에 젖어 동성 간 혼인 등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파업에서 이씨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중시했고, 신씨는 회사를 먼저 살려야 한다는 쪽에 방점을 찍으면서 서로 생각이 갈렸다.



그런데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서 이뤄진 두 사람의 실제 대화는 맞짱 토론이 아니었다. 날 선 공방 없이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뱉어내는 추임새가 회의실 밖으로 끊이질 않고 새어 나왔다. 웃음소리도 잦았다. 낯선 사람, 그것도 생각이 다른 누군가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고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화를 마친 뒤 둘 다 상대방 의견에 정서적 공감도와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생각을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다는 신씨는 대화 중에 ‘노키즈존’(어린이 출입 금지 구역)에 대한 자신의 기존 입장(찬성)을 바로 바꿨다. 이씨도 기업금융 업무를 하는 신씨를 통해 파업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답했다.



사실 생각과 입장이 크게 다르면 만날 일도 적거니와, 마주 앉아 소통한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불편하니 피하거나 말을 섞지 않는다. 실제 이번 기획을 위한 섭외도 쉽지 않았다. 언론 노출을 꺼린 탓도 있지만 대화를 부담스러워했다. 태극기 집회에 부지런히 참석한 어느 70대 남성은 “좌파가 싫어. 얘기하면 욕 나올까 봐 말 안 해. 욕하면 지는 거잖아”라며 촛불 집회에 참석한 상대방과 대화를 거부했다. 갈수록 양쪽 끝으로 쏠리는 양극화한 사회가 소통과 대화, 이해와 공감이 부재한 배제와 대립의 사회로 치닫는 관성이다. 이 공식을 깨기 위한 작은 노력과 도전이 ‘한국의 대화’다. 한겨레가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 실험했다. 생각과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상대를 존중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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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수(왼쪽)씨와 조서진씨가 2일 서울 종로구 종각의 한 카페에서 대화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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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그림을 가르치는 20대 중반 조서진씨는 고등학생 때 촛불 집회에 몇번 참석했다. 당시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씨는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규정짓길 꺼렸다. 그는 친구와 정치적 견해가 달라 충돌한 경험을 한 뒤부터 정치를 주제로 한 대화는 피했다. 겉으로 봤을 때 태극기 집회가 좋게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그분들이 왜 그러는지 배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더 말하기 조심스러워했다.



삼성에 오래 근무하다 퇴직한 60대 중반의 도광수씨는 중도보수적 성향이지만 촛불도, 태극기 집회도 싫다. 너무 선동적인 느낌이 들어서란다. 대학생 때 나름 ‘데모’도 했지만 이제는 길거리에 나와 행동하는 건 피했으면 한단다. 특히 태극기 집회는 ‘빨갱이’를 외치며 시대와 너무 동떨어진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더 싫다고 했다. 그의 카톡방엔 태극기 부대를 편드는 친구와 또래들이 많다.



지난 2일 저녁 서울 종각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난 도씨와 조씨는 한시간 넘게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의 생각 차이는 이예나씨와 신한호씨만큼 크지 않았다. 노키즈존과 증세를 놓고선 관점이 조금 달랐다. 조씨는 노키즈존 이슈와 관련해 가게 주인의 처지를 좀 더 이해하려는 편에 섰고, 도씨는 아이들의 인권 관점에서 바라봤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한 편인 도씨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는 쪽이었다. 조씨는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데는 한목소리였지만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제대로 쓰는지 신뢰가 낮은 편이었다.



둘 다 각자의 생각이 대화 전후 바뀌지는 않았다면서도, 신씨나 이씨와 마찬가지로 자신과 다른 의견에 정서적 공감대와 이해도가 커졌다고 답했다.



대화를 마친 네 사람은 한결같이 비슷한 대화의 자리가 더 많아지길 바랐다. 이들의 생각의 차이는 거의 좁혀지지 않았지만 정서적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 대화는 어떻게 했나?



네명을 서로 생각이 다른 두명씩 짝을 지어 나눴다. 대화에 앞서 서로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기 위한 간단한 설문도 했다. 질문은 전기요금 인상, 정년 연장 등 10개였다. 보통은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대화의 짝을 정한다. 이예나씨와 신한호씨의 ‘거리 값’은 도광수씨와 조서진씨보다 더 컸다. 대화 방식을 안내받은 뒤 서로 생각의 차이가 컸던 주제부터 얘기를 풀어나갔다. 대화는 제삼자의 참여 없이 이뤄졌다. 대화가 끝난 뒤 따로 생각의 변화 여부 등을 물었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김효진 김서연 보조연구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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