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지난달 한국거래소는 2023년 12월 결산법인으로 상장폐지사유가 발생한 회사 중 12개 회사가 감사의견거절·부적정, 사업보고서 미제출 등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입게 되었다. 여기에는 회사나 임원들의 위법행위로 인한 경우가 있지만 현재 법원 판단에 의하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
회사 이사의 임무해태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주주는 상법 제401조 제1항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1993년 선고 판결부터 위 조항에 의한 배상은 주주의 직접손해만 대상이고, 간접손해는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간접손해는 이사가 회사재산을 횡령하여 회사재산이 감소한 경우와 같이 회사가 손해를 입고 그에 따라 주주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되는 손해를 가리킨다. 하지만 회사 재산이 줄어드는 것과 관계 없는 손해는 직접손해로 배상 대상이 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법원이 2012년 판결을 선고한 유명한 옵셔널캐피털 사건을 보자. 코스닥 상장 기업으로 대표이사의 횡령, 주가조작 등이 있었지만 상장폐지 원인은 ‘외부감사인의 감사범위제한 한정의견’이었다. 상장회사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재무제표 외부감사에서, 재무제표에 대한 일부 감사범위가 제한되어 적정의견을 주지 않은 것이다. 한국거래소의 상장규정은 감사범위 제한에 의한 의견 거절이나 한정의견 등 감사인 의견 미달을 회사의 재산상태와 관계 없이 상장폐지 할 수 있는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로 삼고 있다. 횡령은 회사 재산의 감소를 초래한다. 하지만 감사범위 제한 상장폐지는 그와 무관하다. 즉, 감사범위 제한으로 인한 상장폐지와 같이 회사재산의 감소와는 무관하게 이사의 임무해태로 인한 상장폐지가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그로 인한 손해는 배상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 사건 1, 2심 법원은 이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주식의 상장폐지를 신청한 경우와 마찬가지라 보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간접손해에 불과하다고 보아 2심 판결을 파기했다.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는 모두 기각으로 확정됐다.
주주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은 간접손해나 직접손해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법원은 손해 발생 경위에 상장폐지가 개입되면 인과관계를 부정하며 회사의 손해배상책임도 부정하고 있다. P게임즈 사건이 그랬다. 회사는 많은 재산을 가진 상태로 상장폐지가 되었다. 상장폐지의 원인은 역시 감사범위 제한으로 인한 감사의견 거절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 1심 법원은 ‘주주의 간접손해는 배상 대상이 아니다’는 판례 법리가 이사의 책임에 관한 것이지 회사의 책임에 관한 것이 아님에도 엉뚱하게 위 판례 법리를 근거로 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했다. 최근 재상장을 시도하고 있는 W사 사건도 그랬다.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 회사는 상장폐지 되었다. 외부감사인이었던 회계법인 한 곳은 고의로, 나머지 한 곳은 과실로 감사보고서를 허위작성한 것이 드러났다. 분식회계로 상장폐지를 초래한 임원들의 행위도 관련 형사사건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법원은 인과관계를 부정하며 회계법인과 임원들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했다. 여기서도 법원은 상장폐지가 손해의 원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 상장폐지가 허위공시로 인한 것임에도 그랬다.
상장폐지로 주가가 하락해 발생한 손해에는 회사나 임원들의 위법행위로 인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법원은 그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주주가 어느 임원으로 하여금 일부 횡령을 하게 하고 이를 외부로 알린다. 이어서 외부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적당한 이유로 일부 감사자료 제출을 거부한다. 그럼 외부감사인은 감사의견을 거절하게 되고 회사는 상장폐지 된다. 상장폐지를 위한 정리매매 과정에서는 당연히 주가가 폭락한다. 대주주는 정리매매 과정에서 헐값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다.
유사사례에서의 법원 판단에 의하면 회사도, 임원도, 대주주도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형사책임도 횡령금액이 크지 않아서 가벼운 처벌만 받을 가능성이 크다. 외부감사 과정에서 허위자료를 제출하는 것은 외부감사법상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정당한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처벌대상이 아니다. ‘정당한 이유 여부’가 처벌의 전제조건이므로 이를 처벌하기 쉽지 않고, 처벌하더라도 그 수위는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낮은 수준의 형사처벌 위험만 감수하면 회사를 상장폐지 시키면서 헐값에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적정 감사의견을 다시 받아서 회사를 재상장하고 주식을 고가에 매도함으로써 다시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밸류업’의 방안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우리 법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아주경제=송하준 기자 hajun825@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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